신장기증인 - 박종숙 목사 2011년 - 1번째
어느때보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 1월 우리의
가슴을 녹여줄 사랑의 주인공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1월 20일 오랫동안 꿈꿔온 생명나눔을
이루기 위해 신장을 기증한 박종숙 목사
입니다. 수술이 있은 후 병실에서 만난
박종숙 목사의 얼굴엔 그저 해맑은 미소만
가득했습니다. 생명나눔이 있기까지 박
목사에게는 감사거리가 무한가지입니다.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인생의 터닝포인트에 얻게 된 생명나눔의 꿈
1998년 박종숙 목사는 연세대학교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학위를 받고서 기쁠 줄만 알았던 예상과는 달리 박 목사는
갈등 속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꿈꿔왔던 목회자의 길을 갈 것인가, 신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또 박 목사를 괴롭혔던 것이다. 그 당시 40세였던 박 목사는 수 없이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렸다. 오랜기간
간절한 기도끝에 순종하게 된 길이 바로 목회자의 길이었다.
그렇게 목회자의 길을 걷던 중 1999년 어느 날 하나님이 주신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호주 한인교회를 갈 수있는 기회를 맞게 된
것이다. 호주로 떠나는 인생의 터닝포인트에 서있던 박 목사는 그때부터 신장기증이라는 아름다운 생명나눔의 꿈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박 목사는 신학공부를 해오면서 실천 없는 탐구적인 삶만을 지향해왔던 본인의 삶을 되돌아 보고 허탈함에 빠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섬기고 실천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생존시 신장기증을 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생명나눔이 있기까지
" 하나님께서 좋은 환경을 허락하셔서 2000년에 호주 시드니에 있는 아름다운교회라는 한인교회에서 목회하게 되었어요. 아름다운
교회는 아담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항상 기쁨이 넘치는 교회였죠." 라고 박 목사는 이야기 한다.
목회를 감당하며 다양한 성도들을 만나게 되지만 박 목사에게는 유독 아직까지 생생히 기억나는 한 자매가 있다고 했다. 30대
초반에 신실한 자매였던 그녀는 안타깝게도 그 당시 암 말기 선고를 받아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고 한다. 교회에서는 온 성도가 함께
1년 동안 자매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고 박 목사는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사명으로 자매를 위해 금식기도를 하며 매주 자매를 방문해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기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자매는 세상을 떠났고 교회전체는 깊은 슬픔 속에 빠졌다고 한다. 그 사건은 박 목사의 신장기증결심을 다시 확고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호주에서의 목회가 7년째 되던 2007년 10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박 목사는 전주 중부교회로 오게 되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그밖에 하나님의 예비하심은 놀라웠다.
예수님을 닮기 위해
" 평신도인 집사님들이 생명을 나누는 데 힘쓰고 있는데 목사인 나는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 보게 되었어요."
전주중부교회로 부임한 뒤 박 목사는 교회에 출석하던 부부신장기증인 박진근∙강기나 씨를 통해 다시금 신장기증에 대한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박진근∙강기나씨는 지난 2007년 1월 국내 최초로 한날한시에 신장 기증을 한 부부이다. 신장기증을 실천하기로
마음을 먹은 박목사는 2010년 6월 사랑의 장기기증예배를 드리며 교인들과 생명나눔의 의미를 나눴다. 신장기증을 위해 자리를
비워야 하기 때문에 박 목사에 대한 교회의 걱정이 컸지만 수술이 결정되고 나서는 성도들이 그의 생명나눔을 위해 더 많이
기도했다고 한다. 또한 박 목사에게는 주변 사람들의 어떠한 만류 속에서도 그의 옆에서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붙들어 준 아내가
있었다.
" 외모로도 내조로도 우리 아내가 최고죠." 라고 아내 자랑에 여념이 없는 박 목사.
수술 당일이었던 지난 1월 20일 서울 아산병원에서 신장기증 수술을 하게 된 박목사는 많은 지인들에게 둘러싸여 감사의 기도를
받고서 수술실에 들어갔다. 수술 후 박 목사는 회복을 위해 운동을 부지런히 해야 한다는 박진근집사의 말을 잊지 않고 마취도 덜
풀린 상태에서 온 병동을 돌아다니며 걷기 운동을 해 간호사들이 말릴 정도였다. 그 덕분인지 박 목사는 간호사들이 놀랄 만큼
빠른 회복을 가질 수 있었다.
본인이 드러나기 보다는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기를 원한다며 자신의 신분이 밝혀지지 않기를 원했던 그는 많은
언론에서 취재 요청이 있었지만 거절 하기도 했다.
" 수술을 마치고 회복을 위해 병실에 누워있는 제가 얼마 나 평안하고 기쁜지 몰라요." 라고 선한이웃을 통해 생명나눔의 소중한
경험을 전하는 박 목사.
조금이나마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것 같아 너무도 감사하다는 박 목사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박 목사는
신장기증 수술을 하면서 긍휼히 여기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져 더욱 감사했다는 고백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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