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빌딩 숲에 갇혀 버린 팽나무의 잃어버린 고향 이야기
원본출처 : 솔숩닷컴 [http://www.solsup.com]
[2012. 6. 18]
나무가 여행을 떠난다는 건 순리를 거스르는 일입니다. 나무는 태생부터 한 자리에 붙박여 살게 돼 있는 생명체이니까요. 그러나 사람의 마을에서 살아가려면 나무도 할 수 없이 원치 않는 이사, 내키지 않는 여행을 해야 할 일이 생깁니다. 댐을 지으면서, 수몰의 위기에 처하게 된 큰 나무들이 생사의 위기를 넘고 안전하게 피신하는 경우가 가장 대표적이겠지요. 또 사람들의 편리를 위해 도로를 내거나 큰 건축물을 지으면서, 그 자리에 서 있던 나무가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보금자리를 떠나야 하는 일도 있지요.
부산 나루공원의 팽나무 한 쌍은 2010년 3월에 오백 년 동안 평화롭게 살던 옛 보금자리를 떠나 도심의 번잡한 저자거리로 나왔습니다. 그가 살던 곳은 부산 신항만 건설 계획이 진행 중인 부산의 서남쪽 끝자락 강서구 가덕도의 율리마을이었습니다. 마을에는 비슷하게 크고 오래 된 나무가 세 그루 있었습니다. 한 그루의 느티나무와 두 그루의 팽나무입니다. 느티나무는 다행히 계획된 도로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두 그루의 팽나무가 서 있는 자리로는 도로를 뚫어야 한다는 계획이 나왔습니다.
살림살이 터를 갈아엎는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마을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마을 앞 갯벌은 마을의 살림을 풍요롭게 가꿔주는 황금어장이었습니다. 특히 피조개를 중심으로 한 조개류는 지천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비교적 부유하게 살 수 있었던 것도 조개잡이 덕이었지요. 그 갯벌을 갈아엎고 신항만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 나온 겁니다. 옹기종기 모여 있던 살림집은 모두 헐어야 했고, 마을 앞 갯벌에 널린 조개를 채취하는 일도 이젠 글렀습니다. 마을의 젖줄이었던 샘물도 갈아엎게 됐고, 마을의 평화를 오백 년 동안 지켜주던 세 그루의 나무 가운데 두 그루는 싹둑 베어나갈 처지가 됐습니다.
사람들은 모여서 이야기했습니다. 살림집은 뒷산 비탈 위로 옮겨간다 하더라도 마을의 상징인 팽나무 한 쌍이 허망하게 넘어가는 건 도무지 바라볼 수 없었지요. 먹을거리가 많지 않던 옛날부터 팽나무에 맺히는 작은 열매를 가장 맛난 간식거리로 기억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무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어떻게든 살려보려는 것이었어요. 도로 계획을 조금만 바꾸면 안 되겠느냐는 청원에서부터 시작했지요. 그러나 한번 나온 설계는 죽어도 바꾸려 들지 않았습니다.
안절부절 못하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인 건 부산시청이었습니다. 부산시청에서는 도로 설계를 바꾸지 못한다면, 안전한 부산 시내로 나무를 옮겨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아무리 나무를 살리기 위한 대책이라지만, 처음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율리 마을의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오백 년을 살았던 나무가 번잡한 도시 분위기에서 살아가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때문이었지요.
시간은 그래서 더 흘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막으려 해도 고작 서른 다섯 가구밖에 안 되는 마을 사람들, 그것도 노인들이 대부분인 마을 사람들의 힘으로는 도무지 나무를 지킬 수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사람들은 부산시청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마을을 떠나는 한이 있더라도 나무가 베어 넘어가는 참사만은 막아야 한다는 안간힘이고 슬픈 선택이었지요. 나무의 안부가 불안했지만, 어쩔 수 없는 최후의 결정이었습니다.
키가 10미터나 되는 두 그루 팽나무의 먼 여행 준비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두 달에 걸쳐 나무는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비용도
만만치 않게 소요됐습니다. 무려 2억5천만 원이 나무 이사에 쓰였으니까요. 나무는 마침내 오백 년 동안 한번도 드러낸 적이 없던
뿌리를 땅 위로 드러냈습니다. 사람들은 나무의 영원한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습니다. 그때 제사를 올리던 제주는 나무에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곧게 잘 뻗은 나무에는 '할배나무', 소담하고 비교적 예쁘게 생긴 나무에는 '할매나무'라 했지요.
마을 앞 바다에 찾아온 대형 바지선에 실려 나무는 율리 마을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뱃길 50킬로미터의 여행 길에 올랐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나무는 부산 해운대의 APEC 나루공원에 옮겨졌습니다. 나루공원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치러지는 부산의 명소 '영화의 전당'과 단일 백화점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는 부산 신세계 백화점 바로 앞입니다. 도심의 공원으로서는 비교적 좋은 환경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 해도 지난 오백년 동안 나무가 살았던 율리마을의 한적함은 찾을 수 없는 날선 도시 풍경일 뿐입니다.
나무는 떠났고, 사람들도 살림집들을 포크레인과 대형 트럭에 내어주고 산비탈로 쫓기듯 올라가 새 마을을 이뤘습니다. 생업이었던 조개잡이의 터전을 잃은 마을 사람들의 허전함은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동산에 올라, 허물어진 집터를 바라보며 한숨 짓는 게 하루하루 이어지는 일상이었지요. 조개들이 한가로이 노닐던 갯벌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생업도 풍요도 모두 잃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막막해진 마을 사람들은 마을을 잘라내듯 곧게 뻗은 신도로와 부산 신항 공사 부지를 바라보며 아픔을 삭여야 했습니다.
사람들의 아픔이 더 깊었던 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던 나무의 텅 빈 자리가 드러내는 공허감 때문입니다. 마을 노인들은 짬만 나면 도로 변에 나와서 옛 살림집들을 하나 둘 짚어보았습니다. 여기는 누구네 집이었고, 저기는 누구네 집이었으며, 그 앞에 바로 팽나무가 한 그루, 그리고 다시 누구네 집 자리를 건너 뛰어서 또 한 그루의 팽나무. 그렇게 옛 일을 짚어보던 마을 사람들이 도시로 떠난 나무를 찾아 보러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떠날 때 온몸에 붕대를 친친 감고 아프게 작별 인사를 나누었던 팽나무의 안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 소식을 듣고 며칠 뒤 가덕도 율리마을을 찾아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먼저 홀로 남은 느티나무 아래에 주저앉아 옛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을 분들께 팽나무가 옮겨 간 해운대 나루공원으로 다시 또 한번 나들이를 하자고 했습니다. 가덕도에서 해운대 나루공원까지는 백 리가 넘는 먼 길입니다. 바로 며칠 전에 다녀온 분들이건만 마다지 전혀 마다하지 않고 흔쾌히 따라 나섰습니다. 그 분들에게는 나무를 찾아가는 길이 바로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가는 길과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시끄러운 소음, 매캐한 매연, 험악한 표정의 낯선 도시에서도 그러나 나무는 생명의 끈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다시 푸른 잎을 피워 올리며, 언젠가 옛날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날 날이 그리웠던 거겠죠. 시골 정자나무는 이제 도심 한복판 빌딩 숲에서 그렇게 이 혹독한 여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나무 앞에서 마을 노인들은 먼저 두 손을 합장하고, 인사부터 올렸습니다. 뭐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듯했습니다. 아마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거나 앞으로도 오래오래 잘 살라는 내용이었을 겁니다.
[나무와 사람 이야기 (80) - 부산 나루공원 팽나무] 신문 칼럼 원문 보기
위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보시게 되는 나무 칼럼이 바로 이 날 부산 가덕도 율리마을과 해운대 나루공원을 찾아가 마을 분들을 만나고, 그 분들과 함께 부산 나루공원까지 나들이를 하며, 슬픈 운명의 팽나무와 나눈 이야기들입니다. 이 날의 거의 모든 거추장스러운 일들은 마을에서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 마흔한 살의 김성진 통장이 맡아주셨습니다.
지금 우리 곁에 살아있는 나무들의 안부는 어떤가요? 모두 안전한가요? 혹시 나무들은 거리의 소음과 매연에 휩싸여 견디기 힘든 신음을 내며 몸살을 앓고 있는 건 아닌가요? 한번 돌아보아야 할 일입니다. 혹시 지금 이 순간에 누군가는 바로 저 나무를 베어내거나 우리 곁에서 내쫓기 위해 무언가를 궁리하는 건 아닐까요? 나무는 우리에게 아무 조건 없이 아낌없이 주기만 하는 생명체이거는 나무와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을 왜 이리 조마조마해야 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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