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

아들 장기 기증한 어머니의 기부금

s덴버 2011. 5. 31. 14:14

"이식 기다리는 환자 눈에 밟혀… 기일마다 50만원 내겠다"
13년째 병상 남편 돌보며 매달 60여만원 벌어 생활…
인정 많았던 아들 생각에 "나도 너처럼 도우며 살게"


지난달 25일 서울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 검은색 정장을 입은 장모(67)씨가 최영하(33) 간호사와 마주앉았다. 장씨가 눈물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연초에 뇌출혈로 죽은 우리 아들 장기를 기증한 엄마예요. 기억하세요? 앞으로 해마다 아들 기일(忌日)에 50만원씩 내려고요."

 

장씨를 알아본 간호사의 눈에도 눈물이 핑 돌았다. 장씨는 "장기이식을 받지 못한 채 마냥 기다리는 대기자가 많고, 겨우 이식받은 후에도 치료비가 없어 건강을 유지하지 못하는 환자도 많다고 들었다"며 "적은 돈이지만 그런 사람들을 위한 약값으로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장씨는 13년 전 뇌출혈로 쓰러진 장애2급 남편을 돌보며 살고 있다. 파출부로 일하며 한 달 60만~70만원을 번다고 한다.

이날은 아들 이종훈(33)씨가 사망한 지 100일을 맞는 날이었다. 어머니 장씨는 1월 18일 아들의 신장·각막·뼈·피부·심장판막을 기증했었다.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다가 1월 15일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졌다. 이틀 만인 17일 뇌사판정을 받았고, 다음 날 숨을 거뒀다. 어머니는 "아들을 조금이라도 이 세상에 더 살게 하고 싶다"며 장기를 모두 기증했다. 두 신장은 만성신부전증으로 8년과 10년을 기다려온 30대와 50대 남성에게 이식됐고, 양쪽 각막은 70대와 40대 여성에게 이식됐다.

 

장례식을 마친 어머니는 아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장기이식센터를 찾아와 서너 시간씩 서성거리다 돌아가곤 했다. 장씨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왔던 것 같다"며 "그런데 어느 순간 다른 환자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 했다.

 

"장기이식을 받지 못한 채 오랫동안 병원을 드나들며 고생하는 사람들이 눈에 밟혔어요. 우리 아들은 수술을 앞둔 후배에게 모아둔 헌혈증 수십 장을 갖다주는 인정 많은 아이였어요. '아들을 위해 더 해줄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적지만 현금을 기부하기로 한 겁니다."

 

장씨는 이에 앞서 지난 3월 정부가 주는 뇌사사망자 위로금(100만원)도 병원에 기부했다. 하지만 장씨는 "기부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다"며 사진 찍는 것도 마다했다. 병원측은 장씨의 돈을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을 위해 쓸 계획이다.

 

기부약정서에 서명하고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엄마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야. 잘했지? 앞으로도 10년은 거뜬히 일할 수 있을 거야. 나도 너처럼 남을 도우며 살게. 아들, 사랑한다.'

 

조선일보 이신영 기자 foryou@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