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

생명·사랑 나눔 ' 부창부수 ' 우승현·김정옥씨 부부… 따스한 사람들 가을햇살을 닮다.

s덴버 2011. 11. 11. 09:41

생명·사랑 나눔 ' 부창부수 ' 우승현·김정옥씨 부부… 따스한 사람들 가을햇살을 닮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 행복한 부부가 있다. 둘이 함께 나눌 수 있어서, 둘을 함께 가슴으로 낳아서. 우승현(47)·김정옥(45·새소망교회

집사) 씨 부부는 동시에 " 나도 지금 그 생각하고 있어" 라는 말을 하며 서로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부부는 어느 한쪽이 집안의

대소사를 일방적으로 결정한 적이 없을 만큼 늘 같은 생각을 하며 동행해온 부부다.  그래서 부부는 한마음으로 신장 기증도 같이

했고, 토끼 같은 두 딸도 입양했다. 부부는 항상 이웃 사랑의 마음을 품고 나눔을 실천하며 살고 있다. 최근 부부와 두 딸을 경기도

의정부시에 위치한 우씨의 일터에서 만났다.

 

신장은 나누고

 

" 신장기증요 ?  굉장히 오래돼서 언제인지도 모르겠어요."

 

1994년 여름, 부부는 동시에 입원했다. 부부가 동시에 신장을 기증하기 위해서였다. 같은 시간에 신장 기증 수술을 받기로 돼

있었지만 우씨의 신장을 이식받기로 한 환자에게서 세균이 발견돼 동시 신장 기증은 불발했다. 우씨는 보름 후 기증했다.

 

" 처음부터 동시 기증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기에 아쉽지는 않아요. "

 

수술 날짜가 늦어져 생업 현장으로의 복귀도 늦어졌지만 함께 나눌 수 있어 행복했다. 대입을 앞둔 아들 재훈이도 부모의 신장기증

사실은 알지만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깊이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이들의 입원과 퇴원은 각 방송사에서

앞다퉈 보도할 정도로 세간의 관심이 뜨거웠다. 부부도 뒤늦게 부부의 신장 기증이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 수술 후 달라진 점은 아무것도 없어요. 수술이 저희 생활에 영향을 끼쳤다면 기억하겠지만 벌써 17년 전 일이라 잘 기억나지도

     않아요. "

 

우씨는 수술 바로 다음 주부터 축구를 했다. 기증 후 특별히 건강관리는 하지 않았다. 우씨는 운동을 좋아해 족구, 축구를 즐기고

김씨는 걸어서 출퇴근하는 게 전부였다. 오랜 휴식을 가질 만큼 여유도 없었다. 열심히 사는 동안 기증 사실조차 잊게 됐다.

 

" 기증 후 오히려 더 건강해졌어요. 신장이 한쪽만 있으면 나머지 한쪽이 더 왕성한 활동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

 

우씨는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만 올해 소식이 두절된 수혜자를 걱정했다. 김씨는 수술 당시 수혜자를 한 번 보고 이제껏 소식을

모르고 지냈지만 우씨는 수혜자와 안부를 서로 묻곤 했다.

 

" 정말 좋은 분이에요. 잊을 만하면 연락을 주시고 본인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이며 손수 농사지은 것들을 보내주세요. "

 

부부가 신장기증을 결심한 건 결혼한 지 1년쯤 되었을 때다. 함께 출석하던 교회에서 신장을 기증한 장로님의 간증을 듣고 감명

받아 기증을 결심했다. 다행히 가족들은 반대보다 열린 마음으로 응원해주었다. 부모를 일찍 여읜 우씨는 누나들에게 허락을 받았고

김씨의 어머니는 장하다며 사위와 딸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셨다. 신앙심이 깊고 생각이 젊으셨던 어머니는 주위 사람들이 걱정

하면 오히려 호통을 치셨다고 한다.

 

부부는 지금도 신장 기증 사실을 털어놓는 것이 쑥스럽지만 늘 장기기증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모든 장기를 기증하고 사후기증,

시신기증까지 한 상태다. 우씨는 어릴 때부터 이웃 사랑에 대한 꿈을 품고 살았고 김씨도 어렵게 살았지만 신앙 안에서 자라다보니

돈을 많이 벌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게 꿈이었다.

 

 " 독지가가 꿈이었는데 어릴 때 생각한 것처럼 되지 않았어요. 그냥 하루하루 벌어서 살 뿐이었어요. 그러면 할 수 있는 것이

   무얼까 생각하니 장기 기증이더군요. "

 

우씨는 그 당시까지 병원에 입원한 적도, 수술을 해본 적도 없어 수술과정에서 많이 힘들고 아팠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사후 기증은

전혀 아프지 않다는 점을 내세워 주위에 적극 권하고 있다.

 

두 딸은 가슴으로 낳고

 

부부는 신앙적 가치관이나 이웃 사랑에 대해 늘 한마음이었다. 6년 열애 끝에 결혼한 두 사람은 연애시절부터 아이를 입양하기로

합의했다. 어느 날 해외입양아의 불행한 현실에 대한 기사를 접하며 “우리는 아이를 입양해 기르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입양의

벽은 높았다. 아이를 잘 키우려면 제일 중요한 것이 경제적 능력인데 입양 조건을 충족할 수 없었다. 젊은 부부가 모아 놓은 재산은

많지 않았다. 신혼여행에서 허니문 베이비까지 갖게 됐다.

 

부부는 입양 조건을 갖추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재훈이가 동생을 낳아 달라고 졸라도 곧 데려올 테니 기다리란 말만 했다. 4년 전

재훈이가 고1이 되어서야 겨우 집을 장만한 부부는 대한사회복지회관으로 향했다. 막상 가보니 부부를 좌절케 했던 조건들이 다

없어졌다. 경제력과 가족이 화목한지만 철저히 물었다.

 

그곳에서 두 살, 7개월 된 자매를 만났다. 한꺼번에 둘을 입양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 경우가 있는 줄도 몰랐다.

" 입양 의사를 알리고 상담을 받았어요. 부부가 각자 다른 방에서 심층면접을 보는데 상담사가 연년생 자매 입양 의사를 물었어요. "

 

순간 김씨는 똑같이 하얀 원피스를 입고 활짝 웃은 꼬마 숙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흥분됐다.

   " 정말 좋을 것 같다 " 며 일단 수락한 뒤 " 남편과 상의하고 최종 결정하면 안 될까요 "  라고 덧붙였다.

옆방에서 상담하던 우씨의 대답도 똑같았다.  " 좋습니다. 하지만 아내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 "

 

부부는 의견일치로 하루아침에 두 딸을 얻었다. 아이들의 이름은 아빠 엄마의 이름을 따서 ' 승아 ' ' 정아 ' 로 지었다. 재훈이를

키울 때 크게 어려움 없이 키웠던 부부인지라 김씨의 친구들이 김씨에게 한마디씩 했다.  " 너는 아들을 너무 쉽게 키워서 겁이 없어

일을 저질렀다 " 고.

 

그런데 승아, 정아는 달랐다. 너무 겁이 없고 활동적이라 양육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혼낼 건 혼냈다. 처음 매 한 대 때리면 가책이

많이 됐다. 마음이 편치 않았던 김씨는 ' 부모교육 ' 을 따로 두 번 받았다.

 

" 혼자 받았어요. 남편은 그런 갈등이 없는데 제 마음엔 갈등이 많았어요. 아이들과 기질이 달라 자꾸 싸우게 됐어요. 부모교육을

  받은 후에는 아이들을 대하는 제 행동은 똑같아도 마음은 편해졌어요. "

 

그런 문제를 놓고 기도하다 자녀양육과정에서 생기는 갈등은 부모와 친자식 사이에서도 똑같이 일어나는 문제임을 알게 됐다.

 

딸 바보

 

가정은 두 딸 중심으로 돌아갔다. 온 집안에 활기가 넘쳤다. 우씨는 딸들의 애교에 쓰러졌다. 부부의 관심이 온통 딸들에게 쏠리자

고1이라 질투를 하지 않을 줄 알았던 아들이 질투했다.

    " 엄마, 나는 저 나이 때 더 잘했지요. "  "엄마, 나는 나는 " 하며 가끔 동생들과 비교를 했다.

그래도 오랫동안 기다렸던 동생들이라 이제는 제법 오빠 노릇을 잘한다.

 

" 요새는 딸들을 입양했다는 것조차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곤 해요. "

 

김씨는 2년 전 딸들을 입양했던 대한사회복지회관으로부터 부재중 전화를 받았는데도 왜 알지도 못하는 단체로부터 전화가

온 건지 하루종일 고민했다고 한다.  전화가 걸려와 직접 받았을 때도 " 미안한데 전화 잘못 거신 것 같다 " 고 답했을 정도다.

그러자 상대편에서 깜짝 놀라며 " 승아 정아 어머니 아니세요 ? " 라고 되물어 그제야 입양을 주선해준 단체임을 떠올렸다고 한다. 긍정적인 현상인지 건망증이 너무 심한 건지 고민스러웠다고 김씨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들은 공개입양을 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입양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려고 한다. 승아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입양 사실을 설명해주려 한다. 요즘 부부는 날마다 " 아이들이 자신들이 사랑받는다는 것을 알고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 는

기도를 한다.

 

불경기인지라 주위에선 사는 게 팍팍하다고 말하지만 미소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을 보며 이들이야말로 

' 참 부자' 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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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글 최영경 기자·사진 홍해인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