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화려했던 지난 봄날의 기억들을 하나 둘 내려놓으며……(1)
[2013. 6. 3]
아파트 울타리에 서 있는 튤립나무가 꽃을 피워 올렸습니다. 여느 튤립나무에 비해 조금 늦은 개화입니다. 큼지막하게 피어나는
꽃송이의 주황 빛은 선명하지만 튤립나무 꽃은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키 큰 나무여서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가지 위에서 피어날
뿐 아니라, 꽃 피기 전에 무성하게 돋아나는 넓은 잎사귀에 꽃송이가 둘러싸이는 탓에 튤립나무 꽃을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울타리를 따라 줄지어 서 있는 여러 그루의 튤립나무 대부분이 이미 꽃잎을 모두 떨구었는데, 울타리 모퉁이의 튤립나무에서는
이제 한창 화려한 꽃송이를 요염하게 드러냈습니다.
큰 나무에서 뻗어나온 나뭇가지 가운데 어른 눈높이 쯤으로 뻗어나온 가지 위에서 피어난 꽃 송이여서 여느 튤립나무의 꽃과 달리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가까이에서 튤립나무 꽃을 바라볼 수 있는 건 이 계절에 도심 아파트 단지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이지 싶습니다. 덕분에 이른 아침 집을 나설 때마다 튤립나무 꽃을 만나려는 설렘에 즐거웠던 날들이 천천히 지나갑니
다. 이제 영락없는 초여름입니다. 하릴없이 지난 봄의 기억들을 하나 둘 내려놓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여름을 맞이할 채비에 나서야
하겠습니다.
제가 사는 마을의 옛 이름은 '복사골'입니다. 수도권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도 복숭아 산지로 유명한 곳, 그 많던 복숭아
과수원을 모두 갈아엎은 이곳 부천시는 이제 과수원 대신 고층 아파트만 즐비한 전형적인 도시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도시에서는
옛 복숭아 산지로서의 명성을 잊지 않기 위해 복사나무를 곳곳에 심어 키우지요. 뿐만 아니라, 판타지 영화제로 유명한 문화센터는
엣 마을 이름을 그대로 들어서 '복사골 문화센터'라 부르기도 합니다.
복사골 문화센터 울타리에서 복사나무를 볼 수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해마다 봄이면 분홍 빛 꽃을 활짝 피어 문화센터를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엣 이야기를 조분조분 들려주는 나무입니다. 아마도 수도권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제 나이 쯤 되는 분들이라
면 한번 쯤 이곳의 과수원에 들른 적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과수원의 추억을 몇 그루 되지 않는 복사
나무의 화려한 꽃송이들이 가만가만 띄워 올립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여러 종류의 나무 가운데 단풍나무를 빼놓을 수는 없겠지요. 물론 단풍나무를 이야기할라치면 가을에 온 잎이
붉게 물들었을 때의 환상적인 모습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단풍나무는 봄에 앙증맞게 돋아나는 연초록의 잎새만으로도
바라보는 사람을 화려한 평온에 들게 합니다. 그 작은 잎새를 피워올린 단풍나무도 사람들 모르게 꽃을 피웁니다. 바로 눈앞에서
조차도 채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잘게 피어나는 꽃입니다.
고작해야 5밀리미터 쯤 밖에 안 되는 작은 꽃송이는 여느 봄꽃만큼 화려하지 않습니다. 작으면서도 한참 바라보면 화려한
매무시를 볼 수 있는 다른 풀꽃들과는 전혀 다른 꽃입니다. 누구의 눈에 뜨이지 않은 채 피어난 단풍나무 꽃은 홀로 음전하게
부르던 봄 노래를 마치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꽃송이와 달리 단풍나무 열매는 눈에 도드라집니다. 가운데에
씨앗을 품고 양쪽으로 날개를 돋아낸 열매는 마치 날개를 활짝 펼친 나방을 닮았습니다. 단풍나무 열매는 잘 익으면 그 날개를
이용해 멀리 퍼져나갑니다.
박태기나무 꽃은 우연히 들렀던 작업실 곁의 관공서 뜨락에서 만났습니다. 처음엔 그 건물의 울타리 바깥으로 고개를 내민 라일락
꽃이 예뻐서 안으로 들어섰는데, 라일락 꽃보다 먼저 채 피어나지 않은 채 꼼지락거리는 박태기나무의 꽃송이를 보게 됐습니다.
그날부터 며칠 동안 연달아 짬을 내서 마치 그 관공서에 출근하듯 매일 찾아가서 마침내 활짝 피어난 박태기나무 꽃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곱고 화려한 박태기나무 꽃송이 앞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박태기나무는 꽃이 피어날 때 지난 해에 맺었던 열매를 함께 매달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콩과의 식물인 박태기나무는 콩꼬투리와
똑같은 모양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듬성듬성 꼬투리 열매를 매달고 있는 박태기나무의 가느다란 가지 위에 올망졸망 피어난 박태기
나무 꽃은 언제나처럼 다정다감합니다. 마치 우리네 시골 집 외할머니처럼 말입니다. 밥풀데기처럼 다닥다닥 가지에 붙어 피어나는
모습이 참 재미있는 꽃입니다. 박태기나무라는 이름이 '밥풀데기'에서 유래한 이름이기도 하지요.
라일락과 박태기나무 꽃을 만나러 들락거린 관공서 뜨락의 가장자리에는 여러 가지 나무들이 있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철쭉이
곳곳에 무리지어 화려한 꽃을 무더기로 피어있는 건 여느 정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가장자리 한켠에 낮은 키의 옥매가
있었습니다. 순백의 꽃을 피우는 옥매 역시 정원수로 많이 심어 키우는 나무입니다. 이곳 뜨락 뿐 아니라, 제가 다니는 학교의 화단
가장자리에서도 지난 봄에 즐겨 찾아보던 나무입니다.
때묻지 않은 흰 색의 꽃잎들이 헤아릴 수 없이 돋아나 만첩을 이룬 옥매는 그 싱그러움이 봄꽃 가운데에 단연 압권입니다. 몽실몽실
피어난 옥매 꽃봉오리들 가운데 서둘러 먼저 피어난 한 송이의 옥매 꽃이 뜨락의 작은 숲 그늘 아래에서 지어낸 해맑은 미소만큼은
지난 봄의 기억에서 오래오래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첫 옥매 꽃을 만나고 며칠 뒤에 온 가지에 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두 피워냈지
만, 무엇보다 처음 피어난 한 송이의 옥매 꽃을 만났을 때의 기쁨이 더 오래 남을 듯하네요.
하마터면 무심한 발걸음에 짓밟힐 뻔했던 작은 풀꽃의 기억도 그렇습니다. 옥매 꽃을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서 바라보기 위해 숲 그늘 안쪽으로 들어서려다 '멈칫'하게 된 것은 발 아래에서 반짝이는 푸른 빛의 꽃 때문이었습니다. '주름잎'이라는 이름의 한해살이
풀입니다. 우리 산과 들 어디에서라도 흔하게 볼 수 있는 풀꽃입니다. 기껏해야 꽃 한 송이의 크기는 1센티미터가 채 안 되는 작은 꽃
입니다. 그러나 통 모양의 꽃송이가 드러내는 화려함은 여느 큰 꽃 못지 않게 도도합니다.
통 모양의 아래 쪽 꽃잎은 흰 색으로 피어나는데, 그 가운데 부분의 요철이 도드라집니다. 도드라지게 튀어나온 부분에는 붉고 노란
빛깔의 얼룩이 배어있어 볼수록 화려한 생김새이지요. 오똑하니 튀어오른 부분에 송송 돋아난 가는 솜털도 특이하다 할 수 있는
특징입니다. 통 모양을 이룬 위쪽의 꽃잎은 푸른 빛이 도는 보랏빛이라는 것도 이 꽃을 오래 바라보게 합니다. 작은 꽃 송이에
들어있는 하얀 색에서부터 노란 색 자주 색 보라 색의 향연이 사뭇 신비롭습니다.
관공서나 학교와 같은 큰 건물의 뜨락 뿐이겠습니까. 우리 주변의 어느 곳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다양한 꽃을 볼 수 있는 때가 봄입니다. 특히 주변 환경 정비에 많은 신경을 쓰는 도시에서라면 예상 밖에 다양한 꽃들을 만날 수 있지요. 어쩌면 산과 들에서 저절로
자라는 풀꽃보다 더 특별한 풀과 나무를 볼 수 있을 지도 모르지요. 8차선의 큰 길 곁에 조성한 화단에서도 다양한 꽃을 볼 수 있습니
다. 자동차 도로가 넓은 탓인지, 이곳에는 인도 또한 넓게 만들고 가로수는 두 겹으로 심어 관리합니다. 형식적으로는 자전거도로와
인도로 나누고 그 경계에 가로수를 심은 것이지요.
그리고 도로 안쪽 아파트 울타리와의 경계에는 화단을 지었습니다. 그 화단에서 봄이면 노오란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습니다. 황매
화입니다. 겹황매화라고도 부르는 죽단화와 함께 심었지만, 먼저 피어난 건 단정하면서도 요염한 몸짓을 가진 황매화입니다. 낮은
키의 황매화는 꽃 피기 전에도 잎맥이 움푹 팬 잎사귀가 싱그러운 나무입니다만 4센티미터나 되는 큼지막한 꽃송이를 활짝 피어냈
을 때에는 주변의 다른 나무들의 화려함을 압도합니다.
황매화 꽃 피어난 화단 주변 바닥에도 계절이 스쳐지나갑니다. 꽃마리 냉이 꽃다지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낮은 자리를 대신한 건
씀바귀 꽃입니다. 꽃다지 냉이 꽃마리 만큼 우리 들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씀바귀입니다. 여느 풀꽃에 비해 높이 올라올 뿐 아니라,
꽃도 큼지막한 탓에 씀바귀 꽃은 눈에 잘 띌 수밖에 없습니다. 꽃마리와 같은 잔 꽃송이들과 눈을 맞추려 했던 것처럼 눈을 찡그리지
않아도 씀바귀 꽃은 그 생김생김을 속속들이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씀바귀는 봄나물의 한 가지로 오랫동안 우리 곁에서 자라온 풀이지요. 이른 봄에 새로 나는 잎과 뿌리를 무쳐 먹는 거지요.
꽃이 피어나면 나물로 무쳐 먹을 시기는 지난 셈이지만, 꽃만 보아도 충분히 배부를 수 있는 꽃이 씀바귀입니다. 여러해살이
풀이어서, 올해 꽃을 피우고 뿌리를 남긴 씀바귀라면 다시 찾아올 새 봄에 나물로 무쳐 먹을 수도 있는 흔하디 흔한 우리의 다정한
풀꽃입니다.
씀바귀와 비슷하게 생긴 꽃을 피우는 국화과의 풀꽃이 여러가지이지만 아예 씀바귀라는 이름을 가진 풀꽃도 많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산씀바귀 선씀바귀 갯씀바귀 냇씀바귀 좀씀바귀 벌씀바귀 등이 그런 종류이죠. 국화과의 식물이 그렇지만 씀바귀 종류
역시 하나하나 동정(同定)하는 게 제게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씀바귀 종류 가운데 흰 꽃을 피우는 흰씀바귀가 있습니다.
노란 꽃을 피우는 씀바귀만큼은 아니라 해도 역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우리 풀꽃입니다. 모두가 분주히 제 갈 길을 독촉하는 도심
길가에서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조아린 채 즐길 수 있었던 풀꽃들의 봄꽃잔치는 끝모르게 이어집니다.
화려했던 봄 노래가 그렇게 서서히 마무리하는 중입니다. 이른 봄에 집을 나설 때마다 마음 설레게 하던 꽃마리 꽃바지 꽃에서부터
냉이 꽃다지 점나도나물 봄맞이꽃 제비꽃 흰제비꽃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이제는 봄을 보내는 마음과 함께 지난 봄의 추억에 고이
쌓아두어야 할 때입니다. 제비꽃 피어있던 자리에선 서서히 개망초와 엉겅퀴 꽃이 계절의 흐름을 알리며 피어났습니다. 그 곁에서
무뚝뚝하게 울타리를 지키고 서 있던 쥐똥나무도 하얀 꽃을 피웠습니다. 쥐똥나무 하얀 꽃송이에 벌들이 윙윙대며 부지런히 꿀을
모읍니다.
우리 곁에 여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아직 기억해야 할 지난 봄 꽃들의 이야기는 다음 편지에서 더 전해드리겠습니다.
특히 언제까지라도 잊을 수 없는 천리포수목원의 화려했던 봄꽃들의 살가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생명의 노래를 마음
깊이 간직할 수 있도록 다음 '나무 편지'에서 하나하나 돌아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표창원의 희망 돌직구 "장기기증은 가장 가치있는 나눔입니다!"
생명나눔그이후-희망의종소리가 들리시나요? - 순수 신장기증인
안녕하세요, 장기기증 홍보대사 이정용입니다
장기이식에 대해 상담 받을수 있을까요?
4세아이에 간이식 해주고 수술비까지
생명사랑나눔운동 - 2013년 3월 20일 염광여자메디텍고등학교
장기기증 등록하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장기기증인, 이식인 한자리에 모여 생명나눔 체육대회 펼쳐
장기기증, 이젠 '공감'에서 '실천'으로
부비와 함께하는 사랑의 장기기증 캠페인
온라인으로 장기기증 서약하기~ 어렵지 않아요~~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제품군 완전 삭제 방법
'주변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무 생각 - 부는 바람이 낯설어, 지는 꽃을 오래 오래 바라봅니다. (0) | 2013.09.02 |
---|---|
고교생 위안부 할머니 뮤지컬…준비부터 공연까지 '울음바다' (0) | 2013.08.19 |
[나무를 찾아서] 잔인한 도시에서 서럽게 사라져간 자디잔 풀꽃들이여! (0) | 2013.05.16 |
꽃이 피어 아름답고 나무가 있어 행복한 계절이…… (0) | 2013.05.15 |
[나눔프로젝트] 파란 눈의 선생님, 그 사랑을 영원히 잊지 않을게요! (0) | 2013.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