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이야기

고교생 위안부 할머니 뮤지컬…준비부터 공연까지 '울음바다'

s덴버 2013. 8. 19. 10:08

고교생 위안부 할머니 뮤지컬…준비부터 공연까지 '울음바다'

위안부 할머니 앞에서 공연 감정 북받쳐…공연 참여 뒤 역사의식 변화

 

[경남 김해] "친구들과 함께 위안부할머니 관련 자료를 찾아보다가 너무 화가 나서 같이 욕하고, 같이 화내고, 같이 울고 그랬어요. 어떤 역사적 사실 때문에 분노하고 눈물까지 흘린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이번 뮤지컬을 하면서 도대체 우리가 왜 위안부 할머니 문제에 대해 일본에 강력하게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어요."

 

지난 7월 16일, 김해문화의전당 누리홀에서 열렸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위한 헌정 뮤지컬에서 주요 배역을 맡아 활약했던 학생들의 이야기다. 김해교육청과 내동중학교가 주최하고 교육부와 경상남도교육청이 후원해 성사된 이번 뮤지컬은 김해시 청소년들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게 바치는 콘서트이다.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학생들의 역사 의식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 콘서트 이후 추가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학생들을 만나봤다.

 

학생뮤지컬 운영학교(교육부의 예술교육 사업)인 내동중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돼 제작한 이번 뮤지컬은 김해지역연합 방과후 뮤지컬반(가야중, 경원고, 가야고, 제일고, 임호고) 학생들이 함께 하면서 학예발표회 수준을 뛰어넘는 수준 높은 무대를 선보였다. 김복득 할머니의 자서전  '나를 잊지마세요' 를 바탕으로 내동중학교 김문희 교사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까지 맡았다.  

 

 

지난 7월 16일, 김해문화의전당 누리홀에서 열렸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위한 헌정 뮤지컬 현장.(사진=김문희 교사)

 
배우로 참여한 학생들은 총 39명. 모두 전문적인 뮤지컬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는 평범한 학생들이었지만 뮤지컬 동아리를 통해 갈고닦은 실력은 전문 배우 못지 않았다. 김문희 교사는 "3년 전부터 뮤지컬 동아리 담당교사를 맡고 있어서 학생들의 특성이나 말투 등 세밀한 부분까지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의 특성 그대로를 살려 시나리오에 녹여냈다."며 "위안부라는 단어조차 생소할 아이들이 이 무거운 주제를 어떻게 소화해낼 수 있을지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김 교사의 이런 고민을 헤아리기라도 한 듯, 오디션을 통과한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각자의 배역에 대한 고민을 하고, 역사 공부까지 해가며 시나리오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기자 역할을 맡은 한수민(내동중 3년) 양은 "예전에는 교과서 한편에 작게 실린 참고자료만 보고 '아 이런 일도 있었구나'라며 가볍게 생각하고 넘겼는데, 직접 연기까지 해보니 역사의식에 변화가 생겼다."며 "마지막 대사 중 '미안합니다. 혼자 싸우게 해서. 죄송합니다.' 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 대사를 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잔인한 역사를 뮤지컬로 그려내는 동안 학생들은 역사의식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고 말한다.(사진=김문희 교사)

 

 
주인공 순이의 친구로 일본 순사에 의해 잔인하게 끌려가는 위안부 역할을 맡은 정예빈(내동중 3년) 양은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 사실 제대로 알지 못했는데, 역할을 정해지고나서 관련 자료를 찾아 읽어보니 나도 모르게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연습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을 직접 모시고 공연할 생각에 평소보다 더 열심히 임했다."고 말했다.

 

주인공 순이 역할을 맡은 김민경(가야고 2년) 양은 "이번 공연을 하면서 일본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정식으로 사과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소원이 생겼다."며 "이제 겨우 우리 정부에서 연금을 지급하는 상태인데, 그보다는 일본의 역사 인식에 대한 변화가 더 절실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어느 순간 스스로 우리 역사를 찾아 공부하면서, 문제의식을 갖는 단계에까지 도달해 있었다. (사진=김문희 교사)

 

 

 
남학생들의 의식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듯 보였다. 이번 뮤지컬에서 일본장교 역할을 맡은 장지훈(가야고 1년) 군은 "연습할 때는 그저 별다른 감정 없이 배역을 잘 소화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는데, 역사적인 배경을 이해하고나니 마치 제가 한 일이 아닌데도 제가 한 일인 것처럼 감정이입이 돼서 불편했다."며 "공연 당일 김복덕 할머니가 객석에 앉아계셨는데, 마치 내가 할머니를 끌고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공연을 마친 뒤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김문희 교사는 "중·고등학생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고, 그 잔인한 역사를 어떻게 뮤지컬에 담아낼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는데 오히려 아이들이 먼저 적극적으로 다큐멘터리나 책, 영상 등 각종 자료를 찾아본 뒤 자신의 배역에 대해 이해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언젠가는 연습실에 모인 아이들이 위안부 할머니 관련 영상을 보며 다 같이 울고 있더라."고 회상했다.

 

 

잔인한 일본 장교 역할을 맡아 힘들었지만, 최선을 다해 공연했다는 장지훈 군은

공연 후 스스로 감정을 주체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고 털어놨다. (사진=김문희 교사)

 

 


김 교사는 "공연 당일에도 학생들이 할머니를 처음으로 직접 만나뵙고 인사를 드렸는데, 다들 감정이 격해져 대기실에서 엄청나게 우는 통에 공연이 불가능할 정도였다."며 "아이들에게 더 잔인하게, 더 불쌍하게 연기할 것을 주문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아이들의 연기를 보며 치유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아이들은 실제 공연에서 연기가 아닌 진짜 눈물을 흘리며 연기에 몰입해 나갔다.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학생들은 "이번 공연을 하면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신채호 선생의 말을 직접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들은 앞으로 위안부 할머니와 관련된 활동뿐 아니라 우리 역사에도 좀 더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겠다는 다짐도 덧붙였다.

 

김문희 교사의 요청으로 재능기부를 자처한 동서대학교 임권택예술대학 뮤지컬 학과의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모습. [사진=김문희 교사]

 

 
한편, 내동중학교 뮤지컬 단원들의 열정을 관심 있게 지켜본 동서대학교 임권택영화예술대학 뮤지컬학과 교수진과 학생들이 재능기부 의사를 밝혀와 일대일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동서대학교 임권택영화예술대학 뮤지컬학과 오세준 교수는 "학생들이 참여한 뮤지컬을 직접 보니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만든 뮤지컬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며 "좋은 취지에서 제작된 뮤지컬인 만큼 좀 더 보완해 다음에는 더 큰 무대에서 학생들이 공연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문희 교사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민감한 내용과 전문 뮤지컬 단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연장 대관을 번번히 거절당하고, 예정된 공연까지 취소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많이 안타깝다."며 "아이들의 순수한 역사의식을 통해 만든 공연인 만큼 추가 공연 기회가 더 많이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원본출처 : 정책기자 서미자(직장인) sing5102@naver.com , 고교생 위안부 할머니 뮤지컬…준비부터 공연까지 '울음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