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정이품 벼슬 소나무의 정부인 나무로 살아온 육백 년 세월
[2013. 10. 7]
누구의 노랫말처럼 편지를 써야 할 것만 같은 흐린 가을 하늘입니다. 눈이 시릴 만큼 쨍하던 지난 며칠 간의 맑은 가을 하늘이
당장 비를 내릴 듯 우울한 표정으로 낮게 내려왔습니다. 편지를 쓴다 해도 건네줄 집배원이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한적한 시골
마을에 부부로 살아가는 오래 된 소나무가 있습니다.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채 그저 멀리에서 마음으로만 서로의 안부를 근심하며
긴 세월을 살아온 크고 오래 된 장한 부부입니다.
소나무는 암나무 수나무가 따로 없는 암수한그루의 나무이니, 구태여 따지자면 '부부'라는 칭호가 어울릴 리 없지요. 하지만 나무에
기대어 나무를 바라보며 나무 곁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오랫동안 둘 중 한 그루를 기품 있는 선비로 여겼고, 다른 한 그루는 그의
정부인 나무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한 쌍의 부부 소나무는 그렇게 사람들의 생각에 맞춰 근엄한 기상의 선비로, 그를 따르는
푸근한 정부인의 모습으로 잘 살아왔지요.
부부 나무로 살아온 한 그루는 보은 속리 정이품송을 말함이고, 다른 한 그루는 정이품송이 서 있는 자리에서 갈목재라는 고갯길을
훠이훠이 휘돌아 넘어 8킬로미터 쯤 떨어진 곳인 보은군 장안면 서원리에 서 있는 보은 서원리 소나무를 말하는 것입니다.
정이품송이야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나오는 나무이니,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나무이지만, 그의 정부인송인 보은
서원리 소나무는 그보다 덜 알려졌습니다.
보은 서원리 소나무가 정이품송의 정부인송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게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려진 게 없습니다. 오래 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왔다고만 전할 뿐입니다. 보은 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소나무 가운데에는 가장 큰 나무인데다가 두 나무의
나이가 대략 6백 살 정도로 비슷해 보인다는 데에서 이 마을의 옛 사람 가운데 누군가가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것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것이겠지요.
정부인송이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건 얄궂게도 남편 나무인 정이품송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하기 시작한 1980년
전후부터이지 싶습니다. 사람들은 정이품이라는 높은 벼슬까지 얻은 소나무가 시름시름 아파 하며 근사했던 옛 모습을 잃게 되자,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그의 옛 모습과 건강을 완벽하게 회복하기 어렵다면, 그를 닮은 모습으로 그만큼 훌륭하게 자라날 후손이라도
하루빨리 얻어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났을 겁니다.
마침내 정이품송의 건강이 더 악화하기 전에 그의 훌륭한 유전자를 이어받은 후손을 얻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사람들은 두
나무의 혼례식을 치렸습니다. 2002년과 2003년에는 천연기념물 관리를 주관하는 문화재청 주관으로 이 부부 나무의 공식 혼례식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정이품송에서 피어난 수꽃의 꽃가루를 정성껏 채집해서 정부인송인 서원리 소나무의 암꽃에 묻혀주는 혼례식이
었지요. 우리나라 전통 혼례식의 절차를 이용한 멋진 혼례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서원리 소나무가 분명한 정부인송임에도 불구하고 정이품송의 후계목은 다른 소나무를 통해 얻어야 했습니다. 정이품송과
정부인송의 혼례식을 치르기 직전인 2001년, 산림청에서는 전국의 소나무 가운데에서 정이품송의 유전자를 가장 잘 이어갈 가능성
이 높은 나무를 샅샅이 조사했고, 강원도 삼척 준경묘에서 자라는 금강소나무를 정이품송과 혼례를 치를 나무로 결정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이품송을 꼭 빼어닮은 모양으로 자라는 후계목을 얻는 데에는 성공했고, 그 가운데 한 그루는 지금 서울 남산에 옮겨
심기도 했습니다.
육백 살 된 정부인송 서원리 소나무는 그렇게 아흔다섯 살짜리 어린 삼척 소나무에게 후사를 넘겨주었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정부인의 기품을 잃지 않고 제 자리를 늠연히 지키고 서 있습니다. 보은 서원리 소나무의 키는 15미터가 넘고, 둘로 갈라진
줄기의 뿌리 부분 둘레는 5미터 쯤 됩니다. 게다가 사방으로 넓게 펼친 나무의 품은 유난스레 푸근한 생김새입니다. 척 보는 순간
우리네 모든 근심을 포근히 안아 줄 외할머니의 넉넉한 치맛폭이 생각나는 형상입니다.
정이품송 못지 않게 훌륭한 나무이면서도 정이품송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진 정부인송은 정부인다운 기품을 갖췄습니다.
특이하게 정부인송은 뿌리에서 뻗어오른 줄기가 둘로 나누어졌습니다. 옛 사람들은 이처럼 줄기가 둘로 나눠진 나무를 대개는
여성형, 즉 할매나무로 불러왔습니다. 시골 마을의 나무를 찾아보면 그 중에는 '할배나무' '할매나무'처럼 부부의 이름으로 부르는
나무를 종종 만날 수 있습니다. 그 경우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대개 곧은 줄기가 하나로 솟아오른 나무를 할배나무로,
둘로 갈라진 나무를 할매나무로 부릅니다.
줄기가 갈라진 대추나무의 줄기 사이에 커다란 돌을 끼워넣으며, '대추나무 시집 보낸다'고 했던 것도 갈라진 줄기를 가진 나무를
여성형으로 생각했기 때문이겠지요. 정부인송의 갈라진 두 줄기는 무척 튼실하게 솟아올랐습니다. 두 줄기 중 하나는 곧게 섰고,
서쪽으로 뻗은 한 줄기는 서쪽으로 조금 기운 상태이지만, 두 줄기의 사이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아서 나무는 전체적으로 옹골찬
모습의 기품을 잃지 않았습니다.
꼼꼼히 살펴보면 부러지고 찢겨나간 가지도 있고, 썩어 문드러진 수피도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건강에 큰 문제를 일으킬
만큼의 상처는 아닙니다. 이제 생명의 끈을 내려놓을 듯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정이품송에 비하면 정부인송은 매우 건강하다고
해도 될 겁니다. 앞으로도 정이품송에 대한 기억과 함께 오래오래 우리 곁에 머무르기를 기원할 일입니다.
정부인송 이야기와 함께 궁금해 하실 정이품송의 지금 모습과 보은군수가 계획 중인 흥미로운 몇 가지 행사 이야기는 다음
나무편지에서 전해드리겠습니다.
빠르게 몰려 오는 가을 하늘의 구름 끝에는 태풍의 기미도 들어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 많이 오신답니다. 가을에 어울리지 않는
태풍이지만 이곳 지날 때에는 가을비처럼 순하게 지나기를 바라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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