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받은 사랑 베풀고 떠날 수 있어 기쁩니다"
고아에 가난한 화가, 그의 인생은 늘 힘겨웠다. 아버지는 늘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내가 죽으면 장기기증을 할 수 있게 해다오'
평생 사회로부터받은 사랑을 죽을 때라도 갚고 싶다던 아버지는 소원
대로 사후 각막 및 인체조직 기증으로 세상에 마지막 선물을 남겼다.
- 각막을기증하신故이병철님, 유가족이성훈씨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
지난해 8월 23일 새벽 아버지는 일어나지 않으셨다. 그 전날까지도 기분좋게 저녁을 드시고 주무신터라 가족들은 너무나 놀랐다.
아들 이성훈 씨는
" 돌아가시기 전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기분이 좋으셨어요. 식사도 맛있게 하시고 어머니와 대화도 오붓이 하시고…. 아무도
그런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
아버지 故이병철님은 발견 즉시 인근병원으로 옮겼으나 사망진단을 받았다. 원인은 심근경색.
"아버지가 평소 술을 좋아하셔서 몸상태가 좋지는 않으셨지만 그렇다고 큰 병을 앓고 계시지는 않았어요. 아버지의 죽음은
어머니와 저희 형제에겐 큰 충격이었죠"
그런 경황이 없는 가운데서 어머니는 아들들에게 아버지의 뜻을 알렸다.
"어머니가 갑자기 저희 형제를 부르시더니 아버지의 생전 뜻대로 각막기증을 할 수 있게 해드리자고 말씀하셨어요. 아버지는
힘든 인생을 사시면서 그동안 사람들에게 받은 도움이 많았는데 이것을 조금이라도 갚는 길은 각막기증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말이죠"
가족들은 아버지의 그 뜻을 이뤄드리기 위해 본부로 연락을 했다. 故이병철 님은 각막을 기증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과 함께
희망을 전했다.
"아버지가 정말로 원하셨던 각막기증을 하시고 떠날 수 있게 돼 저희 가족은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어머니도 아버지가
각막기증을 하고 가신 것 덕분에 더 위안을 받으셨다고 하셨어요"
고아에 가난한 화가로 산다는 건
故이병철 님은 고아였다. 그의 삶은 힘겹고 외로웠다. 어린나이에 구두닦이부터 막일까지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였다.
17살이 됐을 때 그런 그의 착실한 모습을 눈여겨보았던 한 미술학원 원장이 그에게 학원 청소 일을 맡겼다.
미술학원 청소를 하면서 틈틈이 원장으로부터 미술 공부를 배웠다. 미술에 소질이 있었던지 3년 정도 배우고 나니 스케치 강사를
할 정도로 실력이 향상됐다. 그렇게 학생들에게 스케치를 알려주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가진 것은 없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하지만 장인, 장모의 반대가 심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배운것 없는 고아에게 자기 딸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가 너무 심해 당시 어머니는 아버지를 피해 부산 친척집으로 도망을 갔다고 한다.
"부산에 간 어머니는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1년 정도 지났을 때 아버지를 다시 만났다고 합니다"
1년 동안 부산 곳곳을 헤매며 어머니를 찾았다는 아버지는 수소문 끝에 어머니와 다시 재회하게 됐다. 그렇게 다시 만난 둘은
서울로 함께와 살게 됐고 아들 둘을 낳으며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 아버지 별명이 반고흐 였어요. 그만큼 자기만의 세상에서 살으셨죠. 아버지는 누구 밑에서 일할수 있는 분이 아니었어요."
아들 이성훈 씨는 아버지가 가장으로서의 역할보다는 예술세계에 심취해 자유롭게 사시는 모습이 어렸을 적에는 이해가 안갔다고
한다. 세상을 등진 어찌보면 세상이 아버지를 등진 듯한 삶은 계속됐다.
" 하지만 크면서 깨달았어요. 아버지가 얼마나 힘겹고 외롭게 사셨는지…. 그리고 세상과의 소통을 원하셨다는 것도요. 그래서 아마
각막기증도 생각하게 되셨던 걸로 생각돼요" 이제야 아버지 마음을 알 것 같다는 이성훈 씨는 눈물 을 훔쳤다.
평생 풍경화를 그리며 자기만의 세계에 사셨던 아버지였지만
그의 그림에 대한 사랑을 알았기에 아들은 아버지의 작품을
사진으로 찍어 중앙일보 대전에 공모했고 이 작품은 입선하는 영예를 안았다.
" 이 상이 아버지가 평생 그린 그림 중 유일하게 인정받은 게
됐어요. 돌아가시기 전에 제가 해드린 것 중 제일 잘한게
아닐까 싶네요"
아들은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이 이뤄진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아버지가 각막기증을 하고 떠나실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로
고마운 일입니다. 평생 받은 사랑을 베풀고 싶다고 말씀
하셨는데 그 뜻을 이뤘으니 말이죠. 하늘나라 어디선가
흐뭇하게 웃고 있을 아버지 모습이 그려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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