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은행나무 줄기 따라 하늘로 새 봄의 큰 소망을 띄우며
잔뜩 흐린 하늘을 이고 선 나무 곁으로 불어오는 봄날 아침의 강 바람은 차가웠습니다. 대개의 큰 강 주변이 그렇듯이 요 얼마 새에
나무 곁을 감도는 강 줄기의 흐름이 살짝 바뀌었습니다. 나무 곁의 좁다랗던 공간은 널찍하게 펼쳐졌습니다. 예전에 ‘전원일기’라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촬영하던 오붓한 시골 마을 느티나무 쉼터와는 다른 분위기입니다.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이야기하기 전에 옛
모습을 잃은 것만큼은 아쉽습니다. 경기도 양평 양수리 두물머리 할배 느티나무 이야기입니다.
학교 대문을 활짝 열어젖힌 삼월이 시작되면서 날씨에도 제법 봄 기운이 들어찼지만 햇살 잡히지 않는 찌부듯한 하늘 아래에서 맞는 바람은 여전히 차갑습니다. 그래도 언제나 이 즈음이면 그랬던 것처럼 ‘삼월’을 ‘춘삼월’이라 부르고 싶어지고, 낮은 곳에서 울려오는 봄 노래에 귀 기울이려 오가는 길에서는 몸을 한껏 낮추게 됩니다. 이제 곧 바람 따스해지고, 매화 꽃 피어나겠지요.
하릴없이 길 위에 나서야 할 마음 조마조마 설렙니다.
굿으로 한해를 시작하는 건 우리네 옛 마을의 오랜 풍습이었지요. 가장 많은 굿은 정월 대보름에 올립니다. 한햇동안 농사도 잘
짓고, 마을의 모든 사람살이에 평화와 안녕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지요. 이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지만, 지난 정월
대보름에도 여전히 당산굿 소식이 적잖이 들려왔습니다. 한해를 시작하면서, 모두가 평안하고 좋은 일 많이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기원제라고 보아야 할 겁니다.
경기도 동두천시의 자그마한 마을의 은행나무에서 마을 굿을 올린 건 지난 늦가을이었습니다. 한 해의 시작이 아니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즈음이었지요. 농사를 짓던 옛 마을 풍경을 완전히 잃은 건 아니지만, 동두천시 지행동 마을의 옛 풍경은 빠르게 사라지는 중입니다. 오랫동안 마을을 지켜온 은행나무 바로 옆까지 높지거니 솟은 아파트가 다가왔고, 나무 바로 옆의 공터는 지금 한창 아파트 단지 공사로 분주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이곳도 양평 두물머리 느티나무가 그런 것처럼 풍경이 적잖이 바뀌겠지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하지만, 아쉬운 마음 깊어지는 것도 역시 어쩔 수 없습니다.
지행동 사람들이 이 은행나무 앞에서 ‘행단제’라는 이름으로 마을 굿을 올린 건 아주 오래 전부터입니다. 사람들은 해마다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어 마을을 환하게 밝히는 시월 상달 초하루에 나무 앞에 모여 굿을 올렸습니다. 나무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농사 일로 살림살이를 이어가던 사람들이 한해를 잘 마무리했다는 감사의 마음으로, 갈무리한 알곡을 제물로 올릴 수 있는 시기인 때문이기도 했을 겁니다.
마을 사람들 가운데 농사를 짓는 사람은 많지 않아도 지행동 행단제는 여전히 한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시월 상달에 지냅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지행동 행단제는 이제 지행동 마을을 넘어 동두천시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대표적 마을 축제가 됐습니다. 그래서 행단제에는 얼마 안 되는 마을 사람 뿐 아니라, 동두천시청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동두천을 대표하는 문화단체와 시민들이 곳곳에서 찾아옵니다. 지난 가을에도 지행동 행단제는 자그마한 마을에서 벌이는 축제로 보기 어려울 만큼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지요.
지행동 은행나무는 키가 20미터를 훌쩍 넘었고, 줄기 둘레는 5미터 쯤 됩니다. 키에 비해서는 줄기가 그리 굵은 편이 아니지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 나무는 무려 1천 년 전에 이 자리에 뿌리 내렸다고 합니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인 조선 세조 때의 무인 어유소(魚有沼 1434∼1489) 장군이 어릴 적에 바로 이 나무 곁에 단을 쌓고, 그 자리에서 학문과 무예를 닦았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합니다.
어유소 장군의 후손들이 삶을 이어온 마을에서는 이 나무를 조상의 얼을 기억할 수 있는 증거로 삼아 오래도록 귀중하게 지켜왔습니다. 나무가 매우 영험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은행나무는 조선의 고종 국상일에 큰 가지를 스스로 내려놓으면서 온 나라에 찾아든 슬픔을 함께 슬퍼하면서 백성의 안녕을 걱정했다고 합니다. 이는 역시 1천 살이 넘었다고 하는 경기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에 전하는 이야기와 똑같습니다.
물론 현재의 나무 규모만 보아서는 1천 살이라는 그의 나이가 그리 쉽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보다 훨씬 적은 나이를 가진 은행나무보다 오히려 규모는 작아 보이니까요. 하지만 이토록 오래 된 나무의 나이를 누가 정확히 알 수 있을까요? 게다가 이 마을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확실하게 전하고 있으니, 이를 반대할 만한 뚜렷한 증거를 댈 수도 없습니다. 대개의 다른 오래 된 나무와 마찬가지로 마을 사람들의 믿음을 우선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무 주변은 빠르게 바뀌는 중입니다. 처음에 행단제 소식을 듣고 나무를 찾아가는 길에도 마을 어귀의 풍경을 맞이하면서, 도무지 행단제가 치러질 듯한 분위기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그냥 허름한 도시 변두리 분위기이니까요. 오래도록 이 마을을 지켜오던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났고, 그 자리에 새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중입니다. 빠른 변화에도 변함없이 마을을 지키는 건 오로지 나무 뿐입니다. 커다란 은행나무 외에도 마을 안쪽으로는 은행나무가 여러 그루 늘어서 있지요.
어지러운 세상의 빠른 흐름 속에서 나무들만 천천히 옛 일을 오롯이 간직하고 시간의 속도를 붙잡습니다. 마을 어귀의 큰 은행나무 앞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먼저 찾아왔고, 멀리서 온 손님들이 다가왔습니다. 나무 앞의 조붓한 마당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찼을 무렵 나무로 들어서는 좁다란 골목 바깥에서 흥겨운 길굿을 알리는 풍물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풍물패인 ‘동두내옛소리보존회’ 사람들입니다.
꽹쇠(雷公)가 하늘에서 울려오는 천둥 소리를 몰고 와서 소나기 퍼붓는 소리를 내는 장구(雨師) 소리를 이끌어내고, 그 사이로 구름이 떠가는 소리를 담은 북(雲師)과 바람의 소리를 담은 징(風伯)이 울려 퍼지면서 길굿은 장대하게 시작됐습니다. 길굿에 이어 굿의 모든 차례가 하나 둘 이어집니다. 제주가 낭송하는 제문은 나무 줄기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고, 구성진 비나리가 그 뒤를 따라 애잔히 흐릅니다. 모두가 한해 살림살이를 잘 마쳤다는 안도이고, 다가올 새해도 무사태평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굿의 모든 차례가 끝나는가 했더니, 어느 틈에 나무 앞에는 빼곡히 밥상이 차려지고, 따스운 국물이 곁들인 점심 식사가 차려집니다. 식사를 챙기는 분주함 사이로 다시 풍물이 시작됩니다. 내내 굿 판의 뒤편에서 잠잠하게 머무르던 풍물패가 다시 오방진의 흥겨운 가락으로 풍물놀이를 시작합니다. 사람들 사이를 한 바퀴 돌아서고는 나무 가까이에 올라가 나무 줄기를 에워쌉니다. 굵고 어둡기만 했던 천년 은행나무 줄기는 색동 저고리에 둘러싸여 환해집니다.
그렇게 지나온 한 해를 마감하는 동두천 지행동 은행나무 행단제는 천천히 막을 내립니다. 그 새 막걸리 몇 사발로 얼큰해진 마을 노인들의 목청은 높아졌고, 안주거리를 내놓는 아낙들의 손길은 한가로운 듯 바빠집니다. 왁자지껄한 마을 굿판의 한없이 즐거운 평화 위로 나뭇가지 끝에 간당간당 매달렸던 은행나뭇잎 한 장 가만가만 내려앉습니다. 내년에도 다시 보고 싶은, 아니, 오래오래 꼭 다시 보고 싶은 이 땅의 평화입니다.
언제나처럼 기온이 오르락내리락 널 뛰는 이른 봄입니다. 사람의 마을에 머물렀던 겨울이 스멀스멀 다가오는 봄에게 길을 내주느라 법석이는 탓이겠지요. 이제 모든 생명이 기지개를 켜고 새 봄을 노래해야 할 때입니다.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건강과 기운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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