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이야기

[나무 엽서] 겨울 숲 납매 꽃 향기 떠나는 자리에 피어나는 새 봄의 경이

s덴버 2013. 3. 19. 10:25

[나무 엽서] 겨울 숲 납매 꽃 향기 떠나는 자리에 피어나는 새 봄의 경이  

 

 

   봄은 언제나  '첫 사랑 그 여자' 처럼 다가옵니다. 어떤 채비도 채 갖추기 전의 어느 순간, 창졸간에 다가와 바라보는 사람이

옴쭉달싹하지 못하게 온전히 압도하고는 다시 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디론가 훌쩍 사라집니다. 추운 겨울 한가운데에서부터

꽃을 피우는 풍년화가 개화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봄이 우리 곁에 다가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풍년화의 가는 꽃잎이 꼬무락거리며 돌돌 말린 제 몸을 풀어내는 저 앙증맞은 모습 앞에서는 바람 아무리 차가워도 오는

봄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천리포수목원에 자리잡은 여러 종류의 풍년화 가운데 개화를 서두르는 종류는 벌써 지난 1월 말쯤부터 꽃을 피웠지만 대개는

이 즈음 되어야 꽃을 피우지요. 조금 더 기다리면 풍년화 꽃의 길고 가느다란 꽃잎이 활짝 벌어집니다. 그러나 풍년화 꽃이 정말

앙증맞게 귀여운 건 바로 이 때입니다. 리본 말리듯 돌돌 솔솔 말린 꽃잎을 살살 풀어헤치는 자연의 요술이 그것입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풍년화는 살금살금 리본 모양의 가느다란 꽃잎을 풀어 놓습니다. 사람의 몸으로 느끼기에는 여전히 찬 바람이지만,

풍년화는 어느 새 그 바람 결에서 봄 기운을 한껏 느낀 모양입니다. 


 

 
   봄의 걸음걸이를 보다 선명하게 알아챌 수 있는 건 아무래도 낮은 땅 위로 솟아오른 구근식물의 새싹들입니다.

언 땅 깊숙한 곳에서 긴 겨울을 보내고, 누가 따로 돌보지 않아도 모지락모지락 새 생명을 틔워올리는 새싹이 어찌나 기특하고

장한지요. 새싹을 틔운 여러 종류의 구근식물 가운데 큰연못 가장자리에서 돋아난 수선화의 연초록 빛 새싹은 그야말로 경이로움입니다. 바라보노라면,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몸은 물론이고, 세파에 시달렸던 마음까지 활짝 기지개를 폅니다. 옹기종기 피어난

새싹들이 다시 환하게 불러주는 화려한 봄날을 그려볼 수밖에요.
 

 

   이름까지 봄마중꽃인 영춘화(迎春化)도 이제 오는 봄을 맞이하려 몸을 풀었습니다. 그 많은 영춘화 가운데 딱 한 송이의 꽃이

돌담 아래에서 노란 꽃송이를 틔웠습니다. 하마터면 볼 수 없었을 겁니다. 다행히 이 길을 숱하게 오가는 수목원 지킴이 한 분이

차분히 짚어주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 작은 꽃송이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겁니다. 가지 위에 꽃봉오리들이 아직 별다른 개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도 한 송이 꽃이 먼저 몸을 일으켜 꽃을 피웠습니다. 겨울을 이겨낸 영춘화의 장엄한 봄 노래입니다.
 

 

   그리고 이제 지난 겨울 수목원 숲을 빛깔과 향기로 지켜왔던 납매는 서서히 길 떠날 채비를 합니다. 올 겨울 납매 꽃의 향기는

여는 겨울만큼 선명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꽃잎 가까이 코를 밀어 넣어도 꽃 향기는 지난 겨울만큼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납매

꽃의 아득한 향기, 혼절할 수 있을 지도 모를 만큼 짙은 납매 꽃 향기는 이제 다시 세 번의 계절을 지난 뒤에나 찾아볼 수 있겠지요.

아쉽고 또 아쉽지만 계절은 속절없이 새로운 약속만 남긴 채 멀리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 겨울 숲에서 봄 숲으로의 길 그 모퉁이에서 … 2. 28 아침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