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사람과 함께 생로병사의 굴레를 끌어안고 살아온 나무
[2013. 3. 25]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 초등학교 울타리를 따라 걸었습니다. 낮은 울타리에 빽빽이 자리잡은 개나리 여린 가지 끝에 돋아난
자디잔 꽃봉오리에는 노란 기운이 뚜렷합니다. 몇 개의 꽃봉오리는 벌써 봉오리를 열고 노란 속살을 내밀었습니다. 바람결 아직
차가워 옷깃을 여미게 되지만, 이제 개나리는 봄 노래를 외장쳐 부를 기세입니다. 지난 겨울의 긴 침묵을 ?b고 피워 올리는 봄의
교향악입니다. 겨울 지내는 동안 개나리 가녀린 가지의 소리 없는 미세한 떨림에 눈길을 맞추었던 짧은 순간을 기억할 수 있다면
이 봄의 개화는 더 없이 찬란할 것입니다.
긴 침묵 끝에 피어나는 자연의 노래는 화려합니다. 독일 태생의 의사이며 명상수필가인 막스 피카르트는 그의 대표작
' 침묵의 세계 ' 에서 " 침묵을 동한 결합은 지속적으로 존재하며, 말을 통한 결합은 순간적인 것 " 이라고 했습니다. 덧붙여 침묵을
통한 자연과의 결합이야말로 “진리의 순간이며, 따라서 영원의 순간”이라고 했습니다. 새 봄의 우렁찬 노랫소리에 앞서 소리 없이
피어나는 개나리 작은 꽃잎의 떨림을 바라보는 눈길이 하냥 축복으로 느껴지는 큰 이유입니다.
나무는 필경 사람보다 오래 이 땅에 살아남는 생명체입니다. 하지만 나무라고 해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나무도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생명체이니까요. 태어나면 병들어 아프기도 하고, 늙어 죽어야 하는 건 피할 수 없는 모든
생명의 길이겠지요. 그건 오래도록 우리 곁에 서서, 우리의 평화와 안녕을 지켜준 나무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 늘 푸른 소나무 '를 지역의 이름으로 한 경북 청송에서 만났던 천연기념물 제193호 관리 왕버들 앞에 섰을 때에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나무는 4백 살 쯤 된 커다란 왕버들 한 그루이지만, 실제로 이 아름다운 왕버들은
바로 곁에 서 있던 한 그루의 소나무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나무에 전하는 전설이 그럴 뿐 아니라, 이 나무는
' 늘 푸른 소나무 ' 의 고장 청송군의 대표 소나무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청송 관리 왕버들과 그 소나무에 얽힌 애절한 전설이 있습니다. 오래 전에 이 마을에 살던 청춘 남녀의 못 이룬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옛날 이 마을에는 채씨(蔡氏) 성을 가진 처녀가 있었어요. 채씨 처녀는 워낙 착하고 예뻐서 마을 총각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지요.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전쟁터에 나가게 되자, 특별히 채씨 처녀를 마음에 두었던 한 총각이 처녀의 아버지 대신
전쟁에 나가기를 청했습니다. 전쟁을 무사히 치르고 돌아와서 처녀와 혼사를 치를 수 있게 해 달라는 약조를 전제로 한
청이었습니다.
채씨 처녀의 아버지는 총각의 청을 함부로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총각의 청이 하도 애절한 까닭에 하릴없이 허락했다고 합니다.
마침내 총각이 전쟁터로 나가기 위해 처녀와 이별 인사를 나누던 날, 총각은 마을 어귀의 시냇가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올 때까지 이 나무를 마치 자신을 바라보듯 바라보면서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는 당부와 함께 심은 것이지요.
그 나무가 바로 지금의 관리 왕버들입니다.
처녀는 혼인을 위해 목숨까지 던진 총각의 열정에 감동해. 그를 기다리며 왕버들을 정성껏 보살폈습니다. 왕버들은 부쩍부쩍
자랐고, 얼마 뒤 전쟁은 끝났습니다. 그러나 날이 가고 달이 지나도 총각은 돌아오지 않았지요. 처녀는 타오르는 그리움을 견디지
못한 채, 그새 훌쩍 자란 나무에 목을 매었습니다. 자신과의 혼사를 위해 목숨을 잃은 총각을 생각하면 도저히 더 살 수 없었던
겁니다. 얼마 뒤 처녀가 목을 매어 죽은 왕버들 곁에서는 소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 처녀의 한 많은 죽음을 지켜주었습니다.
청송군을 대표하는 푸른 소나무가 바로 그 소나무입니다. 소나무와 왕버들은 전설처럼 처녀 총각이 살아 생전에 이루지 못한 인연을 나무가 되어 이루는 듯한 형상으로 오랫동안 사이좋게 그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청송군에서는 이 소나무에 '만세송(萬歲松)' 이라는
멋진 이름을 붙였고, 나무 앞에는 나무의 이름과 전설을 새긴 근사한 비석까지 세워놓고 잘 관리했습니다.
그러나 나무가 자라면서 서로의 자람을 방해한 것일까요? 만세송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난 2008년 소나무에는
' 좀나무병 ' 이라는 병이 들어 나무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청송군에서는 나무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헛수고
였습니다. 그해 가을, ' 만세송 ' 이라는 이름으로 ' 늘 푸른 소나무 ' 의 고장 청송군을 대표하던 소나무는 결국 회생 불능의 상태에
빠졌고, 어쩔 수 없이 베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만세송은 왕버들 옆으로 둘러친 울타리 안쪽 한 켠에 베어낸 줄기 밑동의 흔적만 남았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생로병사의 굴레에서 어쩔 수 없이 죽은,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처녀와 총각의 혼을 담은
것으로 이야기 되어온 나무 가운데 한 그루가 사라지니, 짝을 잃고 홀로 남은 왕버들이 무척 쓸쓸하게 보입니다. 어쩌면 식물 생태로
보아서는 오히려 생육공간이 트인 왕버들에게 좋은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바라 보는 마음은 꼭 그리 편안한 것이 아니네요.
나무와 더불어 살아가던 청송군 지역민들도 그런 생각인 듯합니다. 베어낸 만세송 앞의 만세송 표지석을 그대로 둔 것도 그런
생각에서였을지 모릅니다. 왕버들 옆의 공터에는 몇 그루의 작은 소나무들이 심어져 있는데, 나중에 청송군에 알아보니,
그 나무들은 만세송으로부터 종자를 받아내 키운 이른바 ' 후계목 ' 이라고 합니다. 죽은 만세송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겠지요.
청송군에는 관리 왕버들을 비롯해 신기리 느티나무(제192호), 장전리 향나무(제313호), 홍원리 개오동나무(제401호) 등 네 그루의
큰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습니다. 천연기념물이 가장 많은 지역 가운데 하나가 바로 청송군입니다. 게다가 연못 속에서
자라는 왕버들을 볼 수 있는 주산지도 있어서, 나무 답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좋은 고장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역 이름에
들어있는 푸른 소나무 가운데 대표할 만한 소나무가 없는 건 아쉬운 일입니다. 만세송을 잃은 게 더 안타까워지는 이유이지요.
만세송을 떠나보냈지만, 왕버들은 앞으로도 오랜 세월 동안 이 자리를 지키며 잘 살아갈 것입니다. 특히 관리 왕버들은 오래 전에
큰 가지를 잘라내야 할 정도의 아픔까지 견뎌낸 적이 있는 장한 나무입니다. 1960년대에만 해도 이 나무는 키가 18미터나 되는
거대한 나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썩어들어간 중심 줄기를 잘라낸 뒤로 지금은 고작해야 7미터가 채 안 되는 정도로 규모는
작아졌습니다. 하지만, 아픔이 있었던 만큼 더 강해 보이는 것은 그저 느낌만이 아닐 겁니다. 이제 관리 왕버들이 곁에서 죽어간
만세송의 몫까지 모두어 더 건강하게 오래 살아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온 대지에 봄빛이 뚜렷해진 춘삼월의 마지막 주가 시작됐습니다.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노래를 맞이하기 위해 높푸른 하늘을 오래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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