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사 장기기증인 故윤세훈, 그 이름을 기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누기를 좋아했던 동생이 마지막까지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다 나누고 갔습니다"
2005년 故 윤세훈 씨는 늦은 저녁, 귀가를 하던 중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 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쳤고,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서울에 살던 윤 씨의 큰 누나 윤복연 씨는 사고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대구로 달려갔다.
40대 후반의 나이에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살았던 동생에게는 이제 다들 자신의 가정을 꾸린 형제들이 가족의
전부였다. 의식불명으로 사경을 헤매던 윤세훈 씨가 뇌사로 추정된다는 의료진의 말에 가족들은 절망에 빠졌다.
어려운 이들에게 자신의 것을 많이 베풀며 살았지만, 정작 윤세훈 씨 본인은 풍족하게 누리며 살지 못했던 것을
떠올리자 가슴이 더욱 미어졌다. 아무런 미동 없이 병실에 누워있는 윤 씨를 바라보며 가족들은 병원을 오갈때마다
종종 보았던 장기기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아주 착한 동생이었으니까요.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자기 가진 것을 다 털어줘야지 직성이 풀리는 아이였으니까
장기기증을 결정했어요."
윤세훈 씨는 생전에 바보같이 착한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어떤 날은 어려운 친구들을 도와준다고 차비까지
다 털어주는 바람에 몇 시간씩 걸어서 집에 오는 때도 있었다. 형제들이 어려움을 토로할 때에도 자신의 적금
통장을 바로 해약해 건네줄 정도로 물질적으로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대신 사람을 좋아하는 가슴 따뜻한이였다.
누나인 윤복연 씨가 아이를 낳았을 때도 하루에 한 번씩 누나 집에 들러 조카의 얼굴을 보고 갈 정도로 아이들을
좋아했고, 손해를 보더라도 어려운 사람들을 살뜰하게 챙길 정도로 주변 이들을 아꼈다.
윤 씨의 조카인 양지숙 씨는
" 삼촌이 극장도 자주 데리고 가고, 맛있는 것도 자주 사줬던 기억이 나요. 아직도 삼촌과 추억이 있는 장소를 종종
찾아서 삼촌 이야기를 할 정도로 삼촌과는 친한 사이였어요." 라고 회상했다.
어려운 이들을 열심히 도우며 살았던 동생이었기에 장기기증을 결정했지만, 생전에 윤세훈 씨가 장기기증 서약을
했던 것은 아니었던 터라 가족들의 마음에는 아픔이 남아있었다.
"장기기증을 하고 난 후,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다가도 어느 순간, 이게 정말 잘한 일인가, 세훈이가 장기기증을
정말 바랐을까 하는 생각들 때문에 괴로운 순간이 많았죠."
그러다 윤복연 씨는 대구에 사는 동생으로부터 서울에서 뇌사 장기기증인들의 가족들을 위한 문화행사가 있으니
참석해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먼저 떠난 동생과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하니 참석을 하지 않을 수 없어 발걸음을
신촌으로 옮겼다.
"당시 신촌에서 진행되었던 연극이 아주 감동적이었고, 뇌사 장기기증인들을 기억하고, 기꺼이 무대에 와서 노래를
불러 준 가수들에게도 고마웠어요."
그 공연을 시작으로 윤복연 씨는 본부에서 진행하는 Donor Family(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모임)의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그리고 작년 올림픽공원에서 진행했던 1일 추모공원에는 온 가족이 함께 참석해
많은 생명을 살리고 떠난 동생의 사랑을 기렸다.
"장기기증이 잘 한 일일까
하는 고민이 많았는데,
본부에서 하는 모임과
행사에 나오면서 잘 한
일이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5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우리 세훈이의 생명을
이어받아 이 세상
어디에선가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이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주변
사람들에게 장기기증에
대해서 열심히 알릴
정도로 자부심이 생겼어요."
윤복연 씨 뿐 아니라 윤 씨의 손자 역시 장기기증을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이제 중학교 1학년인 정세영 군은
할머니의 손을잡고 올림픽 공원에서 진행했던 1일 추모공원에 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장기기증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1일 추모공원에서 얼굴도 잘 모르는 친척 할아버지가 한 일이 아주 대단한 일이고,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할머니를 따라 본부에서 하는 행사에 매번 오면서, 장기기증이 정말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장기기증을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졌어요."
정세영 군은 매 행사 때마다 윤복연 씨와 함께 참여하며, 행사 참여 소감을 기사로 작성해 도봉구 지역신문에
기고하는 등 장기기증을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본부에서 진행하는 모임에 나올 때마다 '故 윤세훈 씨의 누나 윤복연 님'이라고 소개를 해주시는데 그것이
저에게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세훈이는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아내도 자녀도 없잖아요. 누가 세훈이를
기억하며, 그 이름을 불러주겠어요?
그런데 본부 행사에 제가 참여하게 되면 항상 윤세훈이라는 이름이 불려지고, 기억되는 것 같아 감사해요. 그리고
세훈이의 생명을 이어 받은 분들도 비록 우리 세훈이의 이름은 모르겠지만, 그 따뜻한 마음을 닮아서 아름답고
건강하게 그 삶을 이어가 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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