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이야기

[나무 생각] 어머니의 꽃 …… 말하지 않으며 더 많은 말을 하는 나무

s덴버 2016. 6. 13. 10:26

[나무 생각] 어머니의 꽃 …… 말하지 않으며 더 많은 말을 하는 나무




  오래 피어있던 베란다의 제라늄 꽃이 마침내 시들어 떨어졌습니다. 꽃 피어있는 시간이 길어서

집안에 많이 심어 키우는 제라늄을 여러 그루 제 집 베란다에서 키웁니다. 살아오는 동안 제가

가장 먼저 바라본 꽃이 제라늄일 겁니다. 어쩌면 나무를 바라보며 살 수 있었던 것도 어린 시절부터

이 꽃 제라늄을 한 시도 떼어놓지 않고 살았던 까닭이라고 이야기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어제는 그 제라늄 꽃을 참 좋아하던 제 어머니가 곁을 떠나신 뒤, 맞이한 첫 생신 날이었습니다.

가족이 함께 곁에 계시지 않은 어머니의 생신 상을 마련했습니다. 여느 가족이 치르는 순서와 비슷하게

생신제를 치르면서, 어머니가 잠시 찾아와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드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가 음식을 드시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동안에는 여느 제사에서처럼 잠시 뒤로 돌아앉았습니다.

어색함을 덜기 위해, 제가 썼던 글 가운데 어머니를 떠올릴 수 있는 글을 가족과 함께 읽었습니다.



  〔 구순을 앞둔 어머니는 오래전부터 제라늄 꽃을 좋아하셨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집안에

      제라늄 화분이 없을 때가 한순간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지금도 어머니와 함께 사는 내 집의

      베란다에는 어김없이 제라늄 화분이 놓여 있다.


    ‘창가에는 제라늄 화분이 있고, 지붕 위에는 비둘기가 노니는 장밋빛 벽돌로 지은 예쁜 집을 보았어요’

    라고 하면 어른들은 그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해내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십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  라고 말해야 한다. 그제야 어른들은   ‘우와! 좋은 집이구나’  라고 감탄한다.

     -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중에서.


   생텍쥐페리가 예쁜 집의 상징처럼 이야기한 ‘창가에 제라늄 화분이 놓여 있는 집’을 나는 어린 시절에

   허름한 골목길을 전전하던 셋방살이 단칸방으로 생각하고 지냈다. 철들기 훨씬 전부터 창가에서

   한순간도 떠나지 않았던 제라늄 화분은 셋방살이 집에 넘치는 풍요의 상징이었다. 생텍쥐페리도,

   어린 왕자도 알지 못하는 늙은 어머니 덕분이다. 〕 - 천리포수목원의 사계- 봄여름편, 431-432쪽



  구순을 앞둔 무렵에 써서 펴낸 책 《천리포수목원의 사계》의 한 단락이었습니다.

짧은 글을 가족들과 함께 읽으며,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바로 전에 쓴 글도

찾아 읽었습니다. 《도시의 나무 산책기》의 원고를 쓰는 중에 ‘모감주나무’ 열매의 생김새를 꽈리에

비유하면서 쓴 단락입니다.


  〔 구순을 넘긴 내 어머니는 유난히 꽈리 놀이를 좋아했다. 노환이 깊어져 집 밖 출입이 부쩍 줄어든

      어머니가 어느 날 해바라기 요량으로 아파트를 나서다가 현관 옆 화분에서 제대로 맺힌 꽈리를

      마주쳤다. 관리인이 손수 키우는 화분이었다. 어머니는 관리인께 씨앗 몇 알을 부탁했고,

      이듬해 꽈리를 우리 집 베란다의 화분에 심었다. 그러나 볕이 모자란 탓이었는지 새싹이 돋아나지

      않아 어머니의 실망이 컸다. 지난해 가을 다른 곳에서 나는 꽈리 씨앗을 구해왔다.

      걸음조차 불편해진 늙은 어머니께 꽈리는 좋은 마음의 선물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치아도 상해 꽈리 열매를 씹으며 파적하기에는 어머니가 지나온 세월이 길고도 깊지만,

      붉은 꽈리 열매만으로도 어머니께는 기쁨이 되리라. 올봄에는 볕 잘 드는 쪽 화분에 심고

      정성껏 돌볼 생각이다.〕 - 도시의 나무 산책기 213-215쪽



  나무는 말하지 않으면서 참 많은 말을 합니다. 아파트 베란다의 화분에서 말 없이 피었다가 말 없이 지는

한 떨기 제라늄 꽃차례도 바라보면 많은 이야기를 술술 풀어냅니다. 때로는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많은 이야기들도 나무는 별다른 표정 없이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사람의 언어로 말하지 않는 나무의 이야기는

그를 바라보는 사람의 관심과 성의에 따라 달라집니다. 시들어 떨어진 제라늄 꽃잎이 더 붉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돌아보면 나무 한 그루 온전히 바라보기 쉽지 않은 도시에서 태어나 평생 도시를 벗어나지 않고 살아온 제가 나무를 가까이 느낄 수 있었던 건 필경 어머니의 제라늄 화분에서 비롯되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셋방살이 단칸방의 남루한 어린 시절이 누구 못지 않게 화려할 수 있었던 건 제라늄 화분 때문이었습니다. 또 그때 그 화분이 아니었다면 지금 내 앞의 나무를 바라보는 일은 아마도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꽃, 제라늄을 가슴 깊이 오래 간직할 수밖에 없는 까닭입니다.



  오늘 나무편지에서는 몇 가지 알려드릴 게 있습니다. 우선 강연회 소식입니다. 몇 주 째 나무편지에서 소개하는 《슈베르트와 나무》를 소재로 출판사와 출판도시 문화재단에서 공동으로 주최하는 강연회입니다. 이번 토요일인 18일 오후 2시 파주 출판단지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1층 지혜의숲에서 〈나무인문학자와 시각장애인의 아름다운 동행 - 『슈베르트와 나무』 저자와의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강연회입니다.

  내일 15일까지 신청을 마감한다고 합니다. 신청은 인터넷 서점과 파주 출판도시 인문학당 홈페이지에서 접수하는 중인데, 장소가 그리 크지 않아, 인원을 제한하려는 모양입니다. 아래에 인터넷 서점과 출판도시 인문학당의 강연 신청 페이지를 링크하겠습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강연회 참석 신청하기
  인터넷 서점 ‘예스24’에서 강연회 참석 신청하기
  출판도시 인문학당에서 강연회 참석 신청하기


  파주에서의 강연에서는 책에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들려드릴 계획입니다. 특히 ‘말 하지 않으면서 많은 말을 하는’ 생명체인 나무와 ‘말 하지 않으면서 더 많은 말을 하는’ 음악의 만남이라 할 수 있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할 겁니다. 즉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 씨의 연주회에서 피아노 음악과 나무 영상을 어떻게 어우러지게 연주회를 벌였는지를 보여드리고, 그 날 연주회의 영상 일부도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한 가지 더 알려드립니다. 지난 주에 팟캐스트 ‘독자적인 책수다’에서 《슈베르트와 나무》를 쓰는 동안에 있었던 여러 이야기들을 들려드렸는데, 그 2부가 업로드됐습니다. 2부에서는 이 프로젝트의 ‘대단원’으로 준비한 음악회와 관련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특히 책에서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한 준비 과정을 이야기로 풀어냈습니다. 관심 가져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팟캐스트 ‘독자적인 책수다’ 2부 웹에서 듣기
  팟캐스트 ‘독자적인 책수다’ 2부 모바일기기로 듣기



  오늘 〈나무편지〉에는 제가 나무를 가까이 할 수 있도록 어릴 때부터 제게 나무를 보여주신 어머니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나무편지 형식에 맞추느라 어머니 이야기와 함께 보여드리는 사진은 지난 봄에 다녀온 우포 늪의 풍경입니다. 고맙습니다.


- 말하지 않으면서 더 많은 말을 하는 나무를 생각하며 6월 13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