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생각] 귀룽나무 꽃처럼 새 책 《슈베르트와 나무》도 환하게 피어나기를
지난 번 나무편지에서 소개한 귀룽나무의 하얀 꽃이 예쁘게 피어났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이제
이 숲의 주인공은 귀룽나무입니다. 봄을 가장 찬란하게 노래하던 목련이 귀룽나무에게 주인공의
자리를 내준 겁니다. 언덕 위에 서 있는 귀룽나무에 하얗게 덮인 꽃송이들이 찬란합니다.
연둣빛 신록이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이어지는 낮은 언덕의 맨 위에 선 귀롱나무는 주변 풍광을 압도합니다.
귀룽나무 언덕 아래에 새로 들어선 철제 건축물의 날카로운 직선들 탓에 숲의 자연스러운 풍광이
살풍경해진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귀룽나무의 늦봄은 아름답습니다.
마치 목련 꽃 시들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환하게 꽃피운 귀룽나무가 하냥 좋습니다.
어지러이 피어나는 봄꽃들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처음엔 설강화 복수초 풍년화가 봄의 전주곡을 불렀고,
매실나무 크로커스 개나리 진달래가 봄의 소나타를 이어갔습니다. 햇살 따스해지면서 드디어 동백나무
벚나무 수선화 목련이 어우러지며 봄의 교향악을 장엄하게 울렸습니다. 귀룽나무는 그 모든 순서를
재우치지 않고 기다린 뒤에 떠나는 봄이 아쉬워 뒤늦은 봄꽃을 찬란히 피워올렸습니다.
마치 '봄의 커튼 콜'이라고 해도 될 만한 귀룽나무의 늦은 봄 노래입니다.
기후가 일정치 않아 개화 시기가 헛갈렸던 이 봄이지만, 그래도 꽃들은 순서를 지켜서 피었다 집니다.
제 역할을 다 하고 낙화를 재우치는 목련도 그랬습니다. 먼저 흰 색 종류의 목련 꽃이 봄을 불러왔고,
뒤이어 붉은 빛 종류의 목련 꽃이 초록 잎을 함께 돋우며 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직 남은
봄의 시간 동안, 이 숲에서는 목련 가운데에 노란 빛깔의 꽃을 가진 목련 종류들이 봄 노래를 이어갈 겁니다.
숲에 들어설 때에는 그래서 나무처럼 꽃처럼 순서를 기다려야 합니다. 바람결에 몸을 맡기고,
천천히 나무들의 봄노래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람의 일 가운데에도 서두르려야 서두를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감각 중 가장 속도가 빠른
시각을 내려놓고 진행한 지난 해의 제 작업이 그랬습니다. 아주 천천히 나무의 생명 노래를 몸으로
바라보려 한 작업이었습니다. 고작 한 해의 작업으로 마무리했다 할 만큼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일단 한 권의 책과 한 편의 방송 프로그램은 모두 마무리했습니다. 그 가운데 새로 펴내는 책은 아마도
이번 주 중에 서점에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와 나무 인문학자의 아주 특별한 나무 체험〉이라는 부제가 달린 새 책의 제목은
《슈베르트와 나무》입니다.
순정만화의 표지처럼 상큼해 보이는 표지를 가진 이 책에는 참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애썼습니다.
물론 이야기를 담기 전에 다양한 방식으로 나무를 체험하는 과정이 전제돼야 했지요.
짧다면 짧을 수 있는 한햇 동안 시각을 활용하지 않는 한 여자와 나무를 찾아다녔습니다.
그 나무 답사에서의 특별한 체험들을 기록으로 담았습니다. 시각을 뺀 다른 감각으로 나무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그냥 나무 앞에 다가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하릴없이 사람의 감각을 이야기하는 '인지과학' 분야에 대한 공부를 소홀히 할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본다는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야 했으니까요.
시각의 절대화 혹은 시각의 권력화 과정을 이야기한 미디어학자 월터 옹과 마샬 맥루한이 정리한
미디어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당연한 과정이었지요. 또 참 별다른 여자, 바버라 매클린토크의
식물 관찰 방식을 떠올린 것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노벨 생리의학상 부문에서 여성 단독으로는
최초의 수상자가 미국의 식물학자이자 유전학자인 그녀의 생명에 대한 생각을 되짚어본 것도
자연스러운 순서였습니다. 옥수수 염색체를 바라보면서 스스로가 옥수수 염색체가 되어 미세한
염색체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특별한 체험을 통해 염색체의 비밀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하는 매클린토크의
이야기를 함께 짚어보아야 했습니다.
애면글면 마무리한 새 책 《슈베르트와 나무》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그만큼 많은 생각을 떠올리며 지나온 작업들이었습니다. 이미지의 시대라 말하는 이 시대에 시각장애인과
나무를 본다는 조금은 터무니없어 보이는 이 작업에 처음부터 큰 기대를 가진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작업을 진행하면서 많은 걸 얻었습니다. 어떤 결과를 얻을지 초조해 하던 처음과 달리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 작업의 결과를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무엇보다 함께 한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 씨가 이 작업에 보여준 놀라운 관심과 성의에 따른 결과입니다만, 우리의 감각 활용법에 대한
새로운 시사점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더 그렇습니다.
그 하고한 작업들의 결과를 이번 주에는 책 《슈베르트와 나무》(휴머니스트 펴냄)로 내놓게 되고,
다음 주에는 EBS에서 '다큐프라임' 3부작의 하나로 보여드릴 겁니다. '한반도 대서사시 - 나무'
(5월 9,10,11일 오후 9시50분 방영) 가운데 11일 수요일에 방영하는 3부 〈슈베르트와 나무〉가
바로 이 작업 과정을 담은 영상입니다. 물론 한 시간의 영상, 한 권의 책으로 미처 담기 어려운
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우선은 책과 방송으로 지난했던 그 작업의 한 메지를 지으려 합니다.
그 동안 그러셨던 것처럼 큰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새 책의 뒷 표지에 편집자가 적은 책 소개 글의 일부를 베껴 옮기며 이 아침의 [나무편지]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나무는 장애물이었던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와 나무 앞에만 서면 가슴 설레는
나무 인문학자 고규홍이 함께 나무를 느끼고 나무의 참모습을 찾는 아름다운 동행이 시작된다."
- 목련 꽃 진 숲에서 귀룽나무 꽃 바라보며 5월 2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움짤출처 http://blog.naver.com/hyamc/220369391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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