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훈아, 너는 잊혀진게 아냐
2011년 1월 아침, 장부순 씨는 잠든 아들을 깨워 첫 끼니를 챙겨줄 참이었다. 컴퓨터와 씨름하느라 새벽녘까지
깨어있던 아들은 해가 솟은 줄도 모른 채 잠에 빠져있었다. 장 씨의 아들 이종훈 씨는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였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준비하면서부터 종훈 씨는 밤을 잊은 채 컴퓨터에만 매달렸다. 몸이 고달플
정도로 일에 매달리더니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가 뇌출혈로 쓰러진 것이다.
" 종훈이가 숨을 안 쉬어! "
장 씨와 가족들은 종훈 씨를 급히 병원으로 옮겼다. 곤히 잠든 듯 누워있는 종훈 씨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해보였다. 언제고 곧 깨어날 것 같았지만 상태는 심각했다. 뇌의 절반 이상이 기능을 멈춘 상태였기 때문이다.
허옇게 변해버린 CT 사진 속 아들의 뇌를 보며 장 씨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 수술하면 종훈이가 눈을 떠서 이 엄마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볼 수 있나요?" 장 씨는 의료진을 붙잡고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수술도중 죽을 수도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건 못해요. 싫어요. 저렇게 차가운 수술대에서 아들을 죽게 할 수는 없어요." 장 씨는 종훈씨의 수술을 포기했다.
살리지도 못할 수술을 감행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대신 장기기증을 떠올렸다. 장기기증이 생전 종훈씨의
의사는 아니었지만, 장 씨는 장기를 기증함으로써 아들의 생명이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2011년 1월 17일,
최종 뇌사 판정을 받은 직후 종훈 씨는 4개의 장기를 기증한 후 세상을 떠났다.
장기기증으로 많은 이들의 생명을 살렸지만, 이 씨의 장례를 치른 후 장 씨를 바라보는 지인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 너는 어떻게 엄마가 돼서 아들을 갈기갈기 찢어 놔. 너는 엄마도 아니다." 모진 말을 들으며 장 씨는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잘한 일이라고 어깨를 토닥여주던 지인들도 뒤돌아서면 수군대기 일쑤였다. 후회와 절망,
장씨 본인에 대한 자책으로 아들을 보냈을 때보다 더 고통스러운 날을 견뎌냈다. 체중은 9kg 넘게 빠졌고 신경은
항상 날이 서 있었다.
산발이 된 머리를 하고 맨발로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닐정도로 장 씨는 삶의 끈을 놓아 버린 지 오래였다.
" 엄마마저 이러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 아빠는 어떻게 살라고! "
어느 날, 정신을 놓아버린 자신을 만류하는 딸의 울음에 장 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나만 아픈 것이 아니구나.'
▶왼쪽부터 1)故 이종훈 씨와 어머니 장부순 씨 2) 천진난만한 미소로 어린시절을 보낸 故 이종훈 씨
그 후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매일 아침 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거울 앞에서 하하하 웃는 연습을 시작했다. 조금씩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아들에게 부끄러운 엄마가 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지난 2013년부터 본부에서 진행하는 Donor Family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모임)의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상처를 도너패밀리
가족들과 나누며 아픔을 덜어냈다.
" 기증인 유가족들은 너무 아파요. 특히나 기증한지 얼마 안된 때에는 더 힘들죠. 난 그런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싶어요. "
장 씨는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과 긴밀한 교제를 하며 그들을 위로하고 있다. 또한 Donor Family의 부회장직을
맡을 정도로 활동에 적극적이다.
▶ 故 이종훈 씨의 가족 사진
장기기증은 아들을 살리는 길
" 장기기증은 고인을 살리는 길이예요. 또한 가족들도 사는 일이죠. 아들의 장기를 이식받아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참 뿌듯해요. 그래서 지금은 이식인들이 더 건강하게, 오래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때문에 이제는 자발적으로 장기기증을 열심히 홍보하고 다녀요. 장기기증을 망설이는 가족들이
있다면 그러지 마시라고 직접 설득하고 싶어요."
장 씨는 장기기증을 권유할 때 자신이 유가족이라는 사실을 거리낌 없이 밝힌다.
그는 " 내게 1%의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그리고 그들의 마음에 1%라도 닿을 수 있다면 계속해서 장기기증
홍보활동을 할 것. " 이라고 말한다.
한없이 어두웠던 지난날을 지우고 180도 바뀐 삶을 살고있다는 장 씨는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 이제는 아들의 장기기증에 대한 자긍심을 느낍니다. 타인의 생명을 연장해준다는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됐어요.
엄마로서 참 훌륭한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은 결정을 내릴 거예요."
'장기기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기기증]-2015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사업보고 (0) | 2016.04.21 |
---|---|
내일, 모레? 미루지 말고 지금 서약해요! - 배우 송재호 (0) | 2016.03.23 |
뇌사장기기증인 유가족 이야기 - 정말 잘한일 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0) | 2016.03.11 |
[장기기증]-우리의 심장이 다시 뛰고 있습니다. (0) | 2016.02.22 |
[장기기증]-신장기증인 김동구 씨 - 생명을 받은 분이 건강하기만을 바랍니다! (0) | 2016.02.18 |